[기획] 친절해진 기업들… ‘손실 위험’ 줄줄이 정정공시 왜?
입력 2013-12-02 01:33 수정 2013-12-02 19:49
“서울 삼성동 아파트 헬기 충돌 사고 이후 도심 밀집 고층건물의 항공안전 대비책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논란을 투자자께서는 유의하시기 바랍니다.”(롯데물산, 지난달 20일)
“북한이 당사 자산을 몰수하면 3분기 기준 개성은 118억원, 금강산은 806억원 상당의 유형자산이 손실 처리될 수 있습니다. 이 점에 유의해 투자에 임하시기 바랍니다.”(현대아산, 지난달 19일)
기업들이 투자 위험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증권신고서를 정정공시하는 일이 잦아졌다. 동양 사태와 KB국민은행의 해외 손실 사태 등이 잇따르자 금융감독원이 기업들의 공시에서 사업 위험성을 꼼꼼히 알리도록 주문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해외 사업의 손실 위험, 특정 사건이 업황에 주는 영향 등을 신속하게 전달하고 있다.
◇“악영향 유의하십시오”=건설사 삼부토건도 지난달 29일 증권신고서를 정정공시하면서 “르네상스호텔 매각 등 자구계획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심각한 유동성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증권신고서를 정정공시하면서 사업·규제·해외예탁증권(GDR) 관련 위험성을 개별적으로 새로 썼다. 이 회사는 “중국 경제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 유로존 건설생산지수의 하락으로 올해에도 글로벌 건설기계 시장의 낮은 성장이 지속될 것”이라며 “글로벌 건설기계 시장 동향에 촉각을 기울이기 바란다”고 투자자들에게 조언했다.
코스닥 상장사 게임하이는 지난달 29일 증권신고서를 기재 정정하며 시사 이슈로 떠오른 ‘게임 중독법’을 고려하라고 투자자들에게 권고했다. 이 회사는 “게임중독 치유부담금 부담 등을 포함한 게임중독 예방법안, 알코올·마약·도박·게임 등을 중독으로 규정해 예방치료 및 중독 폐해를 관리하는 법안 등 정책 규제로 영업환경이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썼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기존 공시를 수정하면서 사업 위험을 부각했다는 점이다. 경영난을 겪는 기업이 많아지자 금융당국은 투자 위험성을 적극 공개토록 강조하고 있다.
◇공시만 봐도 핵심 정보 알게끔=금감원은 정정공시에서 어떠한 부분이 변했는지 쉽게 알게 하기 위해 서류작성 지침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신고서가 한 차례 정정되면 노란색, 두 차례 이상 정정되면 붉은색으로 바탕화면이 표시된다. 특히 투자위험 부분이 정정되는 경우 해당 내용을 굵은 활자체와 밑줄로 표시토록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공시만 참고하더라도 손실을 피하고 핵심 정보를 얻도록 하려 한다”고 말했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기업들의 공시 의무는 날로 강화되는 추세다. 금감원은 지난 10월에는 동양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된 기업어음(CP)과 회사채 관련 공시서식을 개정했다. 정기공시 때마다 회사채 등의 발행 내역과 향후 10년간의 미상환 잔액을 상세히 기재토록 한 것이다.
‘그 밖에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사항’에는 각종 정부 인증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가 숨어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가족친화인증’의 경우 해당 기업의 직장어린이집 설치 현황, 직원의 육아휴직 이용 현황, 자녀 출산·양육 및 교육 지원제도 실시 여부 등이 기재되고 있다.
지난달 29일부터는 임원들의 성별도 모두 공개되기 시작(국민일보 11월 21일자 1면 참조)했다. 예상대로 국내 상장사 임원진에서는 남초 현상이 심했다. 모나미의 경우 8명의 등기임원과 7명의 미등기임원이 모두 남성이었고 한신공영도 32명의 등기·미등기임원이 전원 남성이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