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죽을 때까지… 잔인한 투견 도박단
입력 2013-12-02 01:31
지난 5월 26일 밤 10시쯤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야산에서 투견도박이 벌어졌다. 가로 세로 각 5m, 높이 1.5m 철제 펜스 안에서 황색 핏불테리어 2마리가 서로 목을 물고 늘어졌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헉헉대는 개들을 수십명이 무심하게 바라봤다. 체중 22∼36㎏의 중형 개 핏불테리어는 근육이 강하게 발달하고 고통을 잘 견뎌 투견에서 자주 동원돼 왔다.
견주(犬主)이자 도박 주최자인 라모(44)씨와 다른 견주 이모(40)씨가 “그렇지, 목을 물어” “낮게 (공격해) 가야지” “뒤로 빠져”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판돈을 담당하는 속칭 ‘매치’ 이모씨가 링 주변을 돌며 사람들에게 돈을 걷어갔다. 이런 개싸움은 이튿날 새벽 6시까지 모두 5차례 열렸다. 한번에 최고 1500만원까지 모두 5700만원의 판돈이 걸렸다.
라씨 등은 스스로 ‘프로모터’라 부르며 투견도박을 주선했다. 경기 고양·구리·광주·남양주, 충남 당진, 강원 춘천 등지를 돌아다니며 인적 없는 야산이나 고가도로 밑 공터에 은밀히 도박장을 마련했다. 네트워크를 형성해 한명이 도박을 주선하면 다른 사람들이 수금원, 심판, 부심, 매치 역할을 맡았다. 설치하기 쉬운 펜스를 갖고 다녔고 단속을 피하기 위한 ‘망꾼’, 도박꾼들에게 음식을 파는 ‘매점주’까지 뒀다.
도박은 수십∼수백명이 한꺼번에 돈을 거는 ‘현장게임’과 투견 체중 및 판돈 규모에 맞춰 견주들 위주로 참가하는 ‘계약게임’ 방식으로 진행됐다. 도박장이 열리면 4∼5차례에서 많게는 10차례까지 투견이 벌어졌다. 검찰이 지난 1년간 확인한 28차례 투견도박에 판돈이 6억2000만원이나 걸렸다. 판돈의 10%는 프로모터가 챙겼다. 도박에는 조직폭력배뿐 아니라 음식점 사장, 중소기업 대표, 증권사 간부, 전직 교사까지 빠져들었다.
투견은 한 마리가 죽거나 크게 다쳐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계속됐다. 승부가 나지 않을 땐 심판이 승패를 정했다. 한 차례 싸움에 30분 정도 걸렸다. 승리한 개는 값이 최대 3000만원까지 올랐고 패한 개는 헐값에 보신탕용으로 팔렸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윤재필)는 투견도박장을 연 라씨 등 9명을 구속기소하고 견주 등 9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1일 밝혔다. 단순 도박참가자 11명은 약식기소, 달아난 8명은 수배됐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