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평동 상전벽해 “슬럼가는 잊어다오”… 사회적기업·예술인 둥지로 거듭난다
입력 2013-12-02 01:35
서울의 미개발 ‘노른자위’ 땅 중 하나인 양평동에 사회적기업과 예술인들이 둥지를 트고 있다. 30여년 전 수도권 경공업 중심지였던 이곳은 관련 업종이 쇠락하면서 슬럼화됐다. 목동과 여의도를 잇는 지리적 이점에 부동산업계에선 한때 ‘제2의 강남’으로 기대를 모았다. 지하철 9호선 개통과 한강 정비로 실제 호재가 찾아오기도 했던 알짜배기 땅에 사회적기업이 문을 두드리는 건 꽤 이례적이다.
“아이고 못 알아볼 뻔했네! 이쪽은 거실이고 저긴 내 쓰던 방이었어. 저 구석엔 탁자가 있었는데.”
지난달 초 한창 오픈 준비를 하던 서울 양평동 카페에 한 할머니가 두리번거리며 들어섰다. 지나다 생각나 들렀다는 할머니는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로 바뀐 자신의 옛 집을 구석구석 살펴보다 떠났다. 할머니가 추억보따리를 풀어놓은 곳은 양평동의 1호 사회적기업 ‘카페 빈자리(Bean Zari)’. 30년 된 단독주택을 개조한 이 카페는 위기 청소년을 돕는 사회적기업 ‘자리(Zari)’가 운영하고 있다.
빈자리에서 약 800m 떨어진 옛 공장에는 7월 ‘어라운지(AROUNZ)’라는 커피 전문 복합문화시설이 들어섰다. 연면적 400여평의 3층짜리 폐공장을 지난해 말부터 리모델링해 마트, 사무실, 교육장 등으로 꾸몄다. 문을 연 지 6개월도 되지 않아 콜롬비아 대사관이 자국 커피농장주들을 이곳에 초청해 세미나를 하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카페 점주, 애호가는 물론이고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찾아온다.
70년대 경공업과 가내수공업이 발달해 베이비붐 세대가 모여들었던 양평동은 80년대부터 활기를 잃기 시작했다. S부동산 안모 대표는 “그나마 자리를 지키던 롯데그룹 공장들이 10분의 1 규모로 줄면서 양평동의 운명도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공장이 떠난 자리는 자동차 정비소와 택배 물류센터, 주차장 등이 채웠다.
개발은 꾸준히 시도됐고 또 좌초했다. 2009년엔 양평5∼6가 일대를 사들이려고 삼성그룹 등 대기업이 물밑작업을 벌였지만 무산됐다. 같은 해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한강 르네상스 개발계획’을 발표하며 이 지역을 유도정비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부동산 경기 침체가 개발을 가로막았고 지구단위계획은 중단됐다.
그랬던 이곳에 다시 활기가 돈 것은 2011년 무렵 아파트형 공장들이 들어서면서부터다. 양평동 4가의 원룸 등 신축 건물을 중심으로 1000가구 정도가 거주하게 됐고 젊은층 유동인구도 늘었다. 지난해부터는 사회적기업과 인디 음악가들이 연습실 등을 문의하러 수시로 이 일대 부동산을 찾는다. 저렴한 임대료와 낙후된 문화환경은 사회적기업, 예술가들, 문화시설 등이 입주해 새로운 공간을 꾸미는 데 오히려 좋은 여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포화상태에 이른 홍익대 부근에서 이곳으로 ‘남하(南下)’하는 추세까지 눈에 띌 정도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