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의 여행] 시오노 나나미 ‘생각의 궤적’(한길사)
입력 2013-12-02 01:31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76)의 감성은 젊은 날 그가 선택한 지중해 편력의 자장(磁場) 안에 있다. 20대의 시오노는 자신의 꿈을 좇아 이탈리아로 혼자 건너가는데 처음 닿은 곳은 다름 아닌 10월의 로마였다. 로마의 가을에 매료된 그는 공짜로 요트를 태워준다는 광고를 보고 요트 클럽을 찾아가 1년 동안 지중해 연안을 돌아본다. 당시를 회고한 에세이 ‘안녕! 지중해’엔 이런 대목이 있다.
“나는, 내가 죽으면 이 지중해 어딘가에 재를 뿌려달라는 유언까지 미리 남긴 사람이니까. (중략) 그렇게 몸으로 직접 체험한 후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해질 무렵의 지중해를 와인색 바다라고 표현한 고대 지중해 사람들의 마음을.”(20쪽)
40년 가까이 여러 매체에 실린 자신의 글을 엄선한 이 에세이집은 30대 젊은 작가의 생기부터 70대 노작가의 성숙한 시선을 망라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가 마키아벨리로 하여금 ‘군주론’을 쓰게 만든 르네상스 시대의 인물 체사레 보르자에 대해 쓰기 위해 신쵸샤(新朝社)에서 제공한 집필실에 머물 때의 에피소드이다.
“나의 주인공 체사레 보르자는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일본의 내 남자 친구들보다 훨씬 현실감 있는 남자였다. (중략) 말하자면 나는 내가 반한 한 남자에게 숨을 불어넣어 살려내었다가 다시 죽이고 싶었다.”(330쪽)
체사레 보르자를 사랑했으므로 그는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아도 부족함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이미 충족되어 있었다. 하지만 훗날 시오노는 이렇게 회고한다. “그러나 일단 내 손을 떠나고 나면, 역시 죽은 남자다. 지난 8년 동안 20쇄 가까이 중쇄되었지만 한 글자도 손질하지 않았다. 손질하고 싶지 않았다.”(331쪽)
그는 로마 시절부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 역사를 훑어왔지만 “반할만한 남자가 쉬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작품 속 인물이지만 작가도 때로는 정조를 지키고 싶었던 것일까. 여든이 가까워오는 지금도 차기작을 집필 중인 시오노의 에세이에서는 그래서인지 지중해의 태양이 빛나고 와인 향의 바람이 일렁인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