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TPP 사실상 참여 선언 이후 할 일

입력 2013-12-02 01:52

농축산업 등 피해 대책 마련 뒤 신중하게 추진해야

정부가 미국이 주도하는 거대 무역 공동체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사실상 참여를 선언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TPP는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의 12개국이 참여해 전 세계 GDP의 38%를 차지한다. 이 거대한 무역시장에 가입할 경우 10년간 2.5∼2.6% 추가 경제성장이 예상되지만 불참하면 0.11∼0.19% 줄어들 것이라는 게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전망이다. 정부가 서둘러 TPP에 ‘관심표명’을 한 것은 일본이 지난 7월 TPP 참여를 공식화하면서 우리만 손놓고 있다가는 낙오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문제는 준비 없이 졸속으로 뛰어들었다가 안방만 내주고 얻는 게 별로 없을 거란 점이다. TPP는 전 품목 관세 철폐뿐만 아니라 투자와 서비스 시장 자유화를 추구하는 높은 수준의 협정이다. 개별 산업의 이해득실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가장 우려되는 분야는 농축산업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면서 쇠고기 시장 개방을 놓고 그렇게 시끄러웠는데 TPP는 농산물 관세 완전 철폐를 지향하기 때문에 쌀 시장 개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일본도 최근 TPP 협상에서 관세율을 현행대로 유지하는 대신 의무수입량을 늘리겠다는 제안을 할 정도로 쌀 시장 개방이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우리 산업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빗장을 풀면 망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내년 말로 쌀 시장 개방 유예기간도 끝나는 만큼 밀려오는 파고에 맞설 수 있도록 국내 농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특단의 대책에 나와야 한다.

우리나라는 TPP 참여 12개국 중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하면 7개국과는 이미 FTA를 체결했고 나머지 국가들과도 FTA를 추진 중이다. TPP 참여는 사실상 한·일 FTA를 맺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일본이 경쟁력 우위에 있는 자동차·기계류·소재·부품 분야의 대응책도 마련해야 한다. 무관세의 일본산 수입차가 몰려들 경우 현대·기아차의 독점적 구조가 지속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금융·의료·교육 등 낙후된 서비스산업 분야 대비도 시급하다.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TPP에 참여하면서 2단계 협상에 들어간 한·중 FTA가 발목 잡힐 수 있다. 중국은 우리의 제1무역국이자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무시할 수 없는 상대다. 최근 방공식별구역 선포로 꼬여가고 있는 한·중 관계에도 손상을 줄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TPP 체결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에 참여에 신중해야 한다는 반대파 의견에도 귀 기울여 이해득실을 좀더 정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장밋빛 전망만을 근거로 무리하게 추진해선 안 된다. 국내 피해 산업에 대한 충분한 대비책을 마련한 뒤 빗장을 풀어도 늦지 않다. 조급하고 졸속으로 강행했다가는 한·미 FTA 추진 과정에서의 혼란과 분열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