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순례자의 길

입력 2013-12-02 01:34


창 47장 9∼10절, 히 11장 13∼14절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볼 때 빠른 세월을 다시금 실감케 됩니다. 성경은 인생을 ‘아침안개’(약 4:14) ‘그림자’(대상 29:15) ‘티끌’ 혹은 ‘아침에 돋는 풀’(시 90:3∼5)에 비유하는가 하면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으로 ‘나그네’(창 47:9, 시 39:12, 히 11:13)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개념으로 ‘나그네’라 함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길손 혹은 방랑객, 고향 떠나 타향살이하는 낯선 사람, 집을 떠나 여행하는 관광객, 그냥 스쳐 지나가는 행인 등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같은 단어이지만 성경 속의 ‘나그네’ 개념은 세상의 나그네와는 구별됩니다. 그는 이 땅에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와 목적의식을 가지고 사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구체적으로 그는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자신이 이 땅에 태어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할 ‘거룩한 나그네’임을 밝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존재인식을 가지고 사는 ‘나그네’를 킹 제임스 번역 성경(KJV)에서는 ‘순례자(pilgrims)’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순례자의 길을 걸어간 성경 속 인물들에게는 공통된 삶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모두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히 11:4∼39). 그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세상의 주인이요 역사의 섭리자로 믿고, 자신의 의지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면서 살았던 신앙인들이었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분명한 목표를 지닌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의 삶의 목표는 과거나 현재에 집착하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쌓아두신 소망에 철저하게 기초한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았습니다(히 11:8∼10, 13∼16). 셋째로 그들 앞에 직면한 고통과 시련을 그들이 극복해야 할 삶의 필수 과정으로 받아들이면서 긍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히 11:25∼26).

마지막으로 세상에서는 비록 초라해보였지만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권력과 물질적 부와 타협하거나 위축당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축복을 빌어주는 영적 권위를 지닌 여유로운 삶을 살았습니다(창 47:7, 10, 히 11:20∼21). 그들은 지상에서 비록 장막생활을 했지만 아무렇게나 살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좇아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보여주는 나그네 인생의 참 모습은 ‘순례자상’입니다. 어거스틴은 그가 33세에 회개하기까지 방랑자로서 나그네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유지하면서 그의 삶은 180도 변화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순례자’로서 교회 역사에 빛나는 위대한 성자의 족적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순례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순례자의 길에 나서야 합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우리는 모두 이 세상을 떠나야 할 존재요, 주님을 만나야 할 순례자들입니다. 광야의 고된 삶 속에서 용기 있는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 우리는 오직 한 가지 ‘믿음의 눈’을 크게 뜨고 살아가야 합니다.

고용수 목사 (전 장신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