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하태림 (11) 지역아동센터를 이끈 힘은 기도와 기부천사들
입력 2013-12-02 01:33
지역아동센터를 시작하며 한부모가정이나 조손가정 아이들의 방과 후 학습 활동은 물론 일상생활까지 책임지는 부모의 역할을 감당하기로 했다. 공부를 가르치거나 악기를 가르쳐주는 것 모두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는 문제였다. 전문적인 기술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돈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센터에는 시력이 나쁜데도 돈이 없어 안경을 끼지 못하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 압축렌즈로 만들어진 안경은 2만원에서 2만5000원이다. 큰 금액이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력도 지속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그때마다 렌즈를 바꿔줘야 한다. 그런 아이들이 한두명이 아니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가장 먼저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어린 아이들의 눈을 밝혀줄 방법을 알려주세요.”
얼마 후 한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서울 노원구에 한 안경점이 있는데 주인이 좋은 일을 많이 하기로 소문났으니 한번 찾아가 보라고 했다. 무작정 찾아갔다. 안경점에는 인상 좋은 아저씨 한 분이 앉아계셨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저희 아이들에게 안경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세요.” 가만히 듣고 있던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시는 데 제가 도움이 된다면 영광이죠.” 알고 보니 그분은 교회의 장로님이셨다. 그 장로님은 2년 가까이 돈을 한 푼도 안 받으시고 아이들의 안경을 맞춰주고 계신다. 얼마 전에도 아이들은 새 안경을 갖게 됐다. 도움을 받은 건 ‘눈’뿐이 아니다.
역촌동에는 우리 센터와 자매결연을 맺은 치과가 있다. 이곳 역시 지인의 소개로 알게 돼 찾아간 곳이다. 우리의 사정을 들은 치과 원장님 등은 흔쾌히 자매결연을 맺고 무료 진료를 해주겠다고 했다. 25명의 아이들이 치료를 받았다. 이 치과는 치료뿐 아니라 센터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경제적으로 후원을 하고 있다. 실로 하나님의 은혜다.
하루는 신학교 동기이자 친구인 목사에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힘들 때마다 적절한 사람을 만나게 해주셔서 위기를 이기게 하신다. 참 신기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나도 그랬다”며 “네가 나에게 그런 사람이다”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1997년도쯤이다. 하루는 학교에서 이 친구를 만났는데 얼굴빛이 별로 안 좋아 보였다. 괜찮으냐고 물었더니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며칠이 지나도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몸은 자꾸 야위어갔다. 병원에 가라 해도 말을 안 들었다. 쓸데없이 돈낭비하기 싫다고 했다. “야, 마침 내가 지금 병원에서 일하잖아. 원무과에 이야기해놨으니까 와서 검사받자.” 친구를 고대병원으로 끌고 왔다.
다행히 병원에서는 무료로 검사를 해줬다. 검사 결과 폐결핵이었다. 증상이 심해 약물치료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잘못하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고 했다. 수술 시킬 돈이 없었던 친구의 아내는 절망했다. 이들은 경제적 형편 때문에 결혼식도 올리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친구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내는 갑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결혼할 때 받았던 패물과 아이들 돌반지를 모두 꺼내왔다. 친구 수술비에 보태라고 했다. 친구는 무사히 수술받고, 2년여 만에 완전히 회복됐다.
정리=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