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명품 좋아하다 다칠라”… 몸 사리는 중국인들

입력 2013-11-30 00:24


중국 정부의 부정부패 척결 운동이 명품시장에 찬물을 끼얹었을까.

화려하고 비싼 물건을 선호하는 중국에서 구찌나 루이비통 같은 명품의 인기가 급속히 식고 있다. 중국의 명품 소비 감소는 안 그래도 둔해진 중국 경제성장에 흠집을 낼 뿐 아니라 전 세계 명품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인은 지난해 전 세계 명품의 31%(105조4266억원)를 사들인 큰손이다.

다국적 경영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는 올해 중국 본토의 명품 소비 규모가 208억 달러(약 22조85억원)로 지난해보다 2.5%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9일 전했다. 지난해 중국의 명품 소비 증가율은 20%였다.

다만 중국의 특별행정구인 ‘쇼핑 천국’ 홍콩은 올해 명품 소비가 지난해보다 10%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면세 혜택을 받는 이곳에선 내국인보다 외국인 여행객이 명품을 휩쓸어간 것으로 보인다.

명품 유통업체 LVMH는 중국 본토 3분기 판매 실적이 저조했다고 지난달 시장분석가들에게 설명한 바 있다. 이 회사는 루이비통, 모엣 헤네시, 크리스찬 디올, 지방시 등을 취급한다. 중국 내 구찌는 3분기 판매량이 줄었다고 모기업 케어링(Kering)이 밝혔다.

중국의 명품 소비 위축은 반부패 정책 영향이라는 분석이 있다. 잘 봐달라며 값비싼 물건을 주고받던 기업과 정관계 인사들이 몸을 사리면서 명품 매장을 찾는 발길도 줄었다는 얘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명품이 관료들에게는 ‘부정한 단어’가 됐다고 지적했다.

명품 장사가 예전만 못한 건 한때 너도나도 사들여 상품의 희소성이 떨어진 탓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제 중국 부유층에선 구찌나 루이비통 가방 하나쯤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는 말이다.

홍콩에 본사 둔 주식중개업체 CLSA에서 소비자 분석을 책임지는 애런 피셔는 “반부패 정책이 명품 판매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충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그는 “중국 명품시장에서 선물용 비중은 37%로 대부분은 합법적으로 주고받는 것”이라며 “사업용 구매는 전체의 15% 정도로 본다”고 덧붙였다.

컨설팅업체 매킨지 차이나의 유벌 애츠먼 대표는 중국 명품 판매 둔화의 상당부분은 시장 성숙에 기인한다고 본다. 중국인들이 살 만한 명품은 이미 대부분 팔렸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새로운 명품을 사러 외국에 나가는 중국인이 상당하다. 쇼핑여행 전문업체 글로벌블루는 올 들어 지난달까지 전 세계 면세 구매의 27%를 중국인이 차지했다고 전했다.

명품에서 줄어든 수요는 그보다 저렴하고 덜 알려졌던 준(準)명품으로도 옮겨가는 분위기다. 핸드백 가격이 루이비통의 3분의 1 수준인 코치는 판매 규모가 지난 9월까지 1년간 35% 늘었다. 지방시는 앞으로 2년간 매장 수를 기존의 3배인 3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기존 명품업체는 방어에 나섰다. 중국에서 최근 몇 년 새 급성장한 루이비통은 매장 신설을 늦추고 기존 40여개 매장의 판매 실적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