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마라토너와 눈 돼준 동반자…7년 만에 뭉쳐 220㎞ 사선 넘는 도전
입력 2013-11-29 18:05 수정 2013-11-29 22:47
무언가 잘못되고 있었다. 2005년 4월 27일 밤 영하 5도로 떨어진 중국 고비사막 한가운데에서 사막 마라톤에 참가한 김경수(51)씨가 발걸음을 멈췄다. 밤하늘 북극성의 위치와 멀리 떨어진 앞선수 배낭에 매달려 있는 ‘깜빡이’ 조명을 나침반 삼아 걷던 길이었다. 그런데 2시간여 동안 속도를 내 쫓았는데도 앞선수와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모래바람 사이로 주변을 살피다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깜빡이로 알고 따라갔던 건 중국 투루판(Turfan) 분지 유전지대 기둥에 꽂혀 있던 횃불이었다.
‘이대로 낙오하면 밤사이 동사(凍死)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엄습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는 급히 사막 위에 무릎과 팔꿈치를 대고 엎드려 포복을 시작했다. 앞팀의 발자국을 찾기 위해서다. 모래바람이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손으로는 깍지를 껴 눈 주변을 감싼 채 코를 땅에 박다시피 하고 ‘죽기 살기’로 기었다. 이곳까지 한 팀으로 움직였던 시각장애인 이용술(52)씨도 심상치 않은 상황을 눈치 채고 물었다. “김형, 우리 길 잃었어?”
이들은 영상 48도까지 오르는 고열의 사막을 뚫고 닷새나 달려왔다. 고비사막 마라톤은 일반 마라톤과 달리 일주일간 253㎞를 횡단한다. 이날은 무박2일로 무려 90㎞를 주파해야 하는 ‘롱데이(long day)’였다. 사건사고가 많기로 악명 높은 이날 전체 참가자 88명 중 47명이 탈락했다. 그러나 장애를 딛고 나선 이씨의 도우미로 처음 참가한 이 대회를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코와 입으로 파고드는 모래덩어리를 씹으며 헤매기를 15분, 김씨가 “찾았다”고 소리쳤다. 먼저 이 코스를 지나간 다른 선수의 족적이 모래 속에 파묻히기 전에 가까스로 찾아낸 것이다. 둘은 서로를 부둥켜안은 뒤 두 손을 맞잡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빠져나왔다.
죽음의 문턱은 하루 앞선 26일 여러 산을 하루에 주파하는 ‘마운틴 데이(mountain day)’에서도 찾아왔다. 고비사막 레이스의 최종 관문으로 불리는 이 코스는 거리는 37㎞에 불과하지만 나무 하나 없는 회색의 흙산을 수십 개나 넘어야 한다.
이씨를 리드하며 길을 걷던 김씨가 능선을 잘못 타고 들어간 게 화근이었다. 산중턱에서 산비탈 중간을 가로지르는 좁은 길인 ‘스네이크 피크’를 만났다. 한쪽은 흙벽, 반대편은 끝도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였다. 이곳을 통과하려면 절벽에 기대어 폭 30㎝의 좁은 길을 약 200m나 걸어가야 했다. 김씨는 앞이 보이지 않는 이씨가 이 사실을 알면 겁먹고 실수할까 봐 마치 평탄한 코스인 것처럼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흙벽을 손으로 짚고 까치발로 스네이크 피크에 발을 디뎠다.
그런데 이씨가 제자리에 서서 벌벌 떨기 시작했다. “김형, 왜 흙이 안 멈추지?” 시각장애인은 일반인보다 청각이 우수하다. 김씨의 발에 채인 흙 부스러기가 낭떠러지를 따라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끝도 없이 나자 이씨가 겁을 먹고 멈춰선 것이다. 태연한 척했던 김씨도 순간 긴장감에 휩싸이며 몸이 굳었다. 레이스를 포기할까 싶었지만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통과하기로 결심했다. 결국 오지 레이스에 여러 번 성공한 이들도 포기하고 돌아갔다는 200m의 길을 이들은 2시간에 걸쳐 게걸음으로 겨우 빠져나왔다. 이씨는 이 길을 지난 뒤 “왜 낭떠러지라고 말을 안 했느냐”며 불같이 화를 냈다.
30일 마침내 그들은 악명 높은 고비사막 레이스를 완주했다. 대회 내내 1m 정도 길이의 노끈으로 서로의 손목을 묶고 다녔던 이들은 레이스가 끝난 후에도 내내 손을 꼭 맞잡고 다녔다. 주최 측은 이들에게 특별상을 수여했다. 모든 참가자들은 시상대에 선 이들에게 10여분간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씨는 김씨에게 “고맙다”고 했고, 김씨는 “형이 없었다면 완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 말고는 평범했던 구청 공무원 김씨가 이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03년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서다. 자원 봉사자의 손을 잡고 최선을 다해 뛰는 이씨를 보고 감동받은 김씨가 먼저 다가가 인사를 했다. 손으로 김씨의 얼굴을 더듬거린 이씨는 “참 선한 인상일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로 김씨와 이씨는 둘도 없는 콤비가 됐다.
고비사막 레이스에 함께 참가하자고 먼저 권유한 것은 이씨였다. ‘형을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됐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중국행을 결심했다. 대회를 준비하며 평소보다 더욱 강도 높게 운동을 했다. 출퇴근 시엔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찼다. 퇴근 후에는 아이들을 재운 뒤 책을 잔뜩 넣은 배낭을 메고 서울 중랑천 변을 3시간 넘게 뛰었다. 그렇게 고비사막 레이스에 성공했고 2006년에는 칠레 아타카마 사막 레이스도 ‘정복’했다.
이 명콤비가 29일 7년 만에 캄보디아로 함께 떠났다.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북서부지역 220㎞를 뛰는 ‘캄보디아 크메르 마라톤(CAMBODIA 2013 The Ancient Khmer Path)’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다른 대회에도 나가려 했지만 주최 측에서 안전 문제로 이씨의 참가를 금지했었다. 그러나 이번엔 철저히 안전점검을 한다는 조건 하에 이씨의 출전이 허락돼 명콤비가 재결성됐다. 김씨는 “사막의 모래 언덕은 넘지 못하는 자에게는 절망의 장벽이지만 넘는 자에게는 희망의 언덕”이라며 “우리가 다시 함께 뛰게 돼 정말 떨린다. 잘하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