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모성] “너는 공부하렴, 기도는 엄마가 대신 할게…”
입력 2013-11-29 17:07
“우리나라에는 기독교, 불교, 유교보다 더 강력한 종교가 있다. 이 종교 앞에선 모든 종교가 힘을 잃는다. 이 종교는 다름 아닌 ‘대학교’다.” 오랜 세월 여러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던 한 교수가 대학을 비롯한 각종 입시 경쟁에 목숨을 거는 학부모와 학생을 두고 빗댄 말이다. 기독교인이라고 다를까. 장로, 권사 직분을 받은 이들도 자녀의 입시가 코앞에 닥치면 예배보다 족집게 학원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00일, 50일 앞둔 전국 교회엔 자녀의 ‘수능 대박’을 기도하러 온 어머니들로 발 디딜 곳이 없었다. 하지만 같은 시기, 교회 고등부 예배시간엔 빈 자리가 많았다. 대다수의 수험생이 시험 전 교회 대신 학원이나 학교를 찾아서다. 중·고등학교 시험 때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평소 예배 참석 인원의 절반 이상이 줄어도 교회학교 목회자와 교사는 예배에 빠진 학생을 나무랄 수 없다.
시험 기간만큼은 ‘예배보다 성적이 더 중요하다’는 논리가 득세하는 곳, 2013년 교회학교의 현실이다.
신앙이냐 성적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서울 가락동의 A교회에서 중등부 성가대 지휘를 맡은 서모(59·여) 권사는 중학교 시험 기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오전 9시 예배에 참석하는 학생 수가 현저히 줄어서다. 시험기간이 아닌 때에 비해 절반 이상의 학생이 예배에 나오지 않았다. 교회학교 교사가 결석한 학생의 학부모에게 전화하면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선생님, 죄송해요. 이번 주까지만 빠질게요. 시험 기간이라서요”라고 답한다. 문제는 이렇게 답하는 이들 대부분이 교회 성도라는 것이다. 8년간 이 교회 중등부에서 봉사했다는 서 권사는 “시험 때만 되면 학원이 교회학교 학생을 싹쓸이해 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한숨지었다. 그는 “시험대비 학원보충수업이 토·일 모두 있는데 여기 빠지면 자녀가 뒤처질까 싶어 경쟁적으로 보내는 것 같다”며 “필요에 따라 예배를 빠지는 학생들이 커서 어떻게 청년부, 장년부에 갈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자녀의 성화에 못 이겨 시험 기간엔 교회를 보내지 않는 부모도 있다. 경기도 산본시 B교회에서 4년째 중·고등부 교사를 하고 있는 신모(46·여) 집사는 얼마 전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 학생이 시험 성적을 볼모로 교회에 안 간다는 것. 교회 성도인 어머니가 여느 때처럼 ‘교회 가라’고 깨우자 자녀는 이렇게 답했다. “시험기간 교회 갔다가 성적 떨어지면 엄마가 책임질 수 있어?” 신 집사는 세속적인 가치관에 따른 학생들의 희박한 주일성수 개념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부모와 자녀 모두 온전한 믿음이 없으면 세속적인 흐름에 따르게 된다. 공부 잘하고 대학 잘 가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신앙생활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독학부모’의 정체성 명확히 하라
시험 기간마다 학생을 찾아보기 힘든 ‘교회학교 공동화 현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가 전국 교회학교 학생 1019명을 대상으로 2008년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회에 못 오는 이유로 ‘학교(학원)에 가야 하기 때문(25.4%)’이라고 답한 이들이 가장 많았다. ‘시험(한자, 컴퓨터, 영어 등)으로 인하여(11.4%)’ ‘학원에 가지는 않지만 공부를 하기 위해(7.8%)’라고 응답한 학생까지 합치면 무려 44.6%가 공부 때문에 교회를 오지 않는다고 답한 셈이다.
‘기도는 내가 할 테니 너는 공부만 하라’는 어머니와 시험 기간동안 예배를 멀리하는 자녀들. 과도한 교육열이 빚어낸 교회 내 기형적 문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전문가들은 신앙보다 점수를 앞세우는 부모의 가치관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봉호(78) 서울대 명예교수는 “경쟁에서 앞서는 걸 공부 잘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예배 시간조차 아껴 공부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라며 “기독교적 관점을 가진 어머니라면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배우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말씀을 실천하는 경건훈련의 일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장 박상진(55) 장신대 교수 역시 어머니 먼저 기독교적 가치관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자녀 인생에서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어머니라면 당장의 시험점수보다 신앙, 성품, 대인관계를 중요시 여길 것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입시는 소명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라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잠 1:7)’이란 성경말씀을 믿고 자녀가 전 생애에서 어떤 결과를 낼 것인가에 더 관심을 두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선 어머니부터 신앙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정병오(47) 입시사교육바로세우기기독교운동 공동대표는 “시험 기간에 예배를 빠져도 된다는 건 자녀에게 ‘예배는 시간 날 때만 드리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자녀의 주일성수는 기본적으로 부모 신앙의 문제”라고 단언했다. 어머니가 아무리 주일성수를 강조해도 스스로 이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공부 대신 예배를 선택하라’고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다.
‘엄마마음 내려놓기’의 저자 주견자(63·여)씨는 어머니가 삶으로 자녀의 신앙을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자녀를 우상 대하듯 하며 신앙생활까지 대신 해 주려는 작금의 세태를 걱정했다. 주씨는 “정말 자녀를 위한다면 직접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24시간 부모가 따라다니면서 기도해주고 지켜줄 수는 없지 않으냐”며 “자녀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어머니가 신앙의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