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브리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 전혜련 소장 “툭하면 주먹질… 죽음 문턱까지 갔었죠”

입력 2013-11-29 16:59


가정폭력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라브리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의 전혜련(56) 소장은 상처 입은 치유자이다. 가정폭력으로 아프고 힘든 여성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 최근엔 ‘가정을 살리는 여자’(예영커뮤니케이션)를 출간했다. 29일 전 소장을 만나 고통의 밑바닥에서 일어나 가정사역자로 살고 있는 이야기를 들어 봤다.

그는 전북 김제 종갓집의 다섯 딸 중 둘째로 태어나 핍박과 설움 속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집안의 절대 권력자인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할아버지는 항상 “네가 크면 너 때문에 먹고 사는 사람이 많을 거여”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의지했던 할아버지를 초등학생 때 갑작스런 사고로 잃었다. 아버지가 목회자였던 친구를 따라 처음 교회에 갔다. 사모였던 친구 엄마는 할아버지를 대신한 격려, 위로자였다.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는 변호사가 되라”며 어린 전 소장에게 비전도 심어줬다. 그는 “할아버지와 사모님의 말씀이 고난을 이기고 가정사역자로 서게 한 힘이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아름다운 찬양을 만들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일반대 종교음악과에 입학했으나 전공을 바꿔 미국 신학교에서 교육학을 공부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했지만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혼생활이 위기에 봉착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했지만 화가였던 남편은 알코올 중독의 늪에 빠져있었다. 남편의 폭력으로 만신창이가 돼 쓰러지는 것이 일과였다. 어렵사리 딸도 낳았지만 남편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운영하던 갤러리가 부도나자 남편은 가출했다. “빚을 갚기 위해 식당에서 관리자로 일했어요. 식당 위치가 청량리 588 주변이어서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많이 왔지요. 그런데 그들의 속 얘기를 들어주다보니 상담 아닌 상담을 하게 됐어요. 상담자로 살기 위한 연습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딸과 친정으로 돌아온 전 소장은 의지할 곳이 교회와 기도원밖에 없었다. 1998년 지구촌교회 가정사역팀을 섬겼다. 상담 사역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파하는 자와 함께 울기로 결심했다. 캐나다에서는 가정폭력에 관한 연구로 석사, 손상된 부부관계 회복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부터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여성들을 위한 상담소를 운영했다. 자신의 집에서 다문화쉼터 사역도 시작했다.

“남편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했어요. 하나님은 한 영혼, 한 가정을 위해 보잘 것 없는 저를 부르셨고, 부르심에 순종한 저를 통해 쓰러진 가정들이 회복되었습니다.”

2011년 ‘과부’에게 회장을 맡길 수 없다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가정사역협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큰 기관과 대형교회에만 한정돼 이뤄지는 가정사역의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였어요. 전 재산을 털어 가정사역기관을 세우는 콘퍼런스를 다섯 차례 개최하며 협회도 사단법인으로 등록했어요.”

이제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회장직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며 미소 지었다. 그러나 새로운 비전을 품었다. 2012년 하나님께서 그를 코스타 강사로 세우시며 호주의 한국유학생들을 품으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그곳 학생들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고 있다.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