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김지방] 정확한 진단

입력 2013-11-29 17:21


몇 해 전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의 일이다. 키재기부터 소변 검사까지 각종 검사를 거쳐 초음파 기기로 내 뱃속을 들여다보는 순서에 이르렀다. 초음파 검사를 맡은 이는 아주 젊어 뵈는 여의사였다. 내가 침상에 누워 윗도리를 들어올리자, 그 의사는 커다란 플라스틱 청소기처럼 생긴 초음파 기기로 내 배와 옆구리를 이리저리 열심히 긁어댔다. 한참을 긁었다. 특히 옆구리를 기기로 문지르고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이 아가씨가 일을 참 열심히 하는구나.’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즈음에 의사가 나를 일으켜 앉혔다. 그녀는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간에서 종양이 보이네요. 크지는 않은데, 좀 더 정밀한 검사를 받아보셔야겠어요.”

종양? 종양이라니. 순식간에 내 얼굴에 핏기가 싸악 사라지고 주변 10미터 안쪽이 진공 상태로 변해 버려 그 속에 나 혼자 둥둥 떠 있는 듯한 정신상태가 되었다.

사무실에 와서 자리에 앉으니, 열심히 일하는 동료들의 모습이 참 멀게 느껴졌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충실한데,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누구도 나의 그런 상태를 눈치채지 못했다. 집에 와서 가만히 아이들과 아내의 얼굴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내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지 못할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게 왜 이런 일이 닥친단 말인가.

며칠 뒤 시간을 내어 동네 내과병원에 갔다. 대학병원 과장 출신이라는 중년의 남자 의사가 초음파 기기를 쥐고 내 몸을 몇 번 쓱쓱 긁어보더니 말했다.

“간에 지방이 끼었네요. 운동 좀 하셔야겠습니다.”

의사의 한 마디에 순식간 나는 삶의 자리로 돌아왔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0.5초 뒤 오진을 한 여의사에 대한 짜증이 몰려왔다. 1분 뒤 짜증은 감사로 바뀌었다. 그래. 덕분에 내가 삶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구나. 죽음이 내 삶에 성큼 다가왔기에.

어떤 이들에게는 내가 겪은 일이 웃어 넘길 에피소드겠지만, 실제로 건강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께는 부러운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살아서 이 칼럼을 읽는 독자와,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이티에서 대지진이 났을 때 취재를 하러 갔다.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삐져나온 인간의 팔다리를 보았다. 살아남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과 살지 못한 사람의 거리는 딱 한걸음이었다. 지진이 날 때 무너진 집 안에 한걸음 들어가 있었으면 죽었고, 한걸음 밖으로 나와 있었으면 살았다.

필리핀에 3주 전 태풍과 쓰나미로 큰 재난이 발생했을 때도 취재를 갔더니 여기선 삶과 죽음이 딱 한뼘 차이였다. 해일에 휩쓸렸던 한명학씨는 덤프트럭의 문짝을 간신히 붙잡고 3시간을 매달린 끝에 살았다. “그 문짝을 놓쳤으면 죽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필리핀 타클로반의 무너진 공항에서 대한민국 공군 수송기를 기다리면서 목사님께 물어보았다.

“성경에는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적혀 있는데, 살고 죽는 것은 어쩜 이렇게 하찮게 결정될까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목숨, 무어 그리 소중할까요.”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는 이들을 삶으로 한걸음, 한뼘 옮겨놓기 위해 한국에서 달려온 그 목사님은 이렇게 답했다.

“김 기자, 난 그런 생각 안 해 보았네. 지금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저 아이 한 명부터 살리는 일이 바쁘잖아.”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내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이라고 기독교는 답한다. 그것만이 죽음을 넘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이라고 기독교는 가르친다.

매력 없는 가르침이다. 건강검진에서 오진이라도 받지 않으면 누구에게나 예정된 죽음조차 내 일로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란 존재다. 더욱이 죄인이라 고백하고 용서를 받으라는 요구는 요령부득이다. 그래서 인간의 지혜로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을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만 한다고 기독교에서는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서 삶이 더 찬란해질까. 사실은 살아남기 위해 죽음을 외면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자리가 없으니까 그냥 돌아가. 우리 말곤 하나 둘씩 지워버리자. 나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대. 물러서지 않으면 다쳐도 몰라.”(엑소 ‘으르렁’)

유한한 삶의 자리를 차지하고 지키려 으르렁대는 일은 이제 멈추고, 죄인임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은혜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한번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권력도 재물도 생명도 유한하다. 죽음을 선고하는 의사에게 오진은 없다. 시간문제일 뿐.

김지방 종교부 차장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