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달력 한 장의 시간

입력 2013-11-29 17:21


‘익스트림 딥 필드(XDF)’는 허블 우주망원경이 최근에 우주의 가장 먼 공간을 찍은 사진이다. 지난해 NASA가 공개한 이 사진에는 132억 광년이나 떨어진 은하가 포함돼 있다. 즉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XDF 속의 한 점은 132억년 전에 반짝인 빛이다. 태양계가 형성된 것이 약 50억년 전이니 그 빛이 출발했을 당시 지구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얼마 전 오하이오 주립대의 천문학자들은 향후 50년 안에 우리 은하 내에서 육안으로도 관측이 가능한 초신성 폭발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보통 은하 하나에서 평균 100년에 한 번꼴로 초신성이 나타난다. 우리 은하에서는 1604년의 케플러 초신성 이후 400여년 동안 초신성이 폭발하지 않았다.

현재 초신성 후보로 가장 유력하게 꼽히는 별은 용골자리에 있는 ‘에타 카리나’다. 남반구 하늘에서 볼 수 있는 이 별은 태양 질량의 100배가 넘는 불안정한 별로,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만약 이 별이 폭발을 일으키면 지구에서 밤에도 신문을 읽을 만한 밝은 빛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에타 카리나 폭발 시 수십일간이나 계속될 우주 쇼를 보기 위한 관광 상품이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에타 카리나는 이미 초신성 폭발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에타 카리나는 7500년 전의 빛이니, 이 별이 어젯밤이나 아니면 1000년 전에 이미 초신성 폭발을 일으켰는데도 아직까지 그 소식이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극성은 옛날부터 항해자나 나그네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을 해 왔다. 허나 우리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북극성 역시 800년 전의 빛이다. 즉 우리는 13세기 초에 출발한 빛을 바라보고서 그곳이 북쪽 하늘임을 알아차린다.

지금 우리 피부에 따스하게 와 닿는 햇볕은 약 8분여 전에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가 평균 약 1억4960만㎞이니 빛이 1초 동안 진행하는 속도인 30만㎞로 나누면 태양에서 지구까지 오는 데 498초 정도 걸린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가족들의 얼굴도 사실은 약 1억분의 1초 전 모습이다. 떨어져 앉아 있는 거리를 빛이 이동할 때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것은 과거이며, 그 과거의 순간들이 촘촘히 박혀 현재를 이루고 있다. 2013년이란 현재가 과거로 반짝일 시간도 이제 달랑 달력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