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세대가 뜬다] 수능1세대… IMF세대… ‘비운의 九死’ 중추세대 되다
입력 2013-11-30 00:41 수정 2013-11-30 04:03
“PC통신으로 사랑을 찾고, 삐삐로 마음을 전하며 음성 메시지로 이별을 통보하던 우린 역사상 가장 젊은 인류였다.”(드라마 ‘응답하라 1994’ 중)
1994년 대학에 입학한 이른바 94세대는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는 변곡점에 서 있었다. 대학 1, 2학년 때만 해도 학교 매점에서 구입한 리포트 용지에 손으로 써서 과제물을 제출했던 그들은 3, 4학년이 돼서는 도트 프린터로 출력한 과제물을 냈다. 97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익스플로러가 확산되면서 인터넷이 활성화됐고 처음으로 이메일 주소를 만들었다.
삐삐와 공중전화로 소통하던 그들은 졸업을 앞두고 휴대전화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은 그때 만들었던 이메일 주소와 휴대전화 뒷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달라졌다.
제일기획 캠페인팀 신찬섭 팀장은 과거 386세대와 지금의 397세대(30대, 90년대 학번, 1970년 이후 출생)는 분명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던 80년대 학번과 달리 90년대 학번은 자유분방하게 자기 주관을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나온 용어가 ‘X세대’였다. 단어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었다.
신 팀장은 “한 세대를 표현하는 용어가 처음 나온 게 이때였다”면서 “‘실체가 있는 문화’를 공유하는 첫 세대”라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요즘에 90년대, 그것도 94학번에 주목하는 것일까. 94세대는 자유롭게 문화를 만끽한 세대였다. 96년 ‘연세대 한총련 사태’ 이후 사실상 학생운동의 명맥이 끊긴 뒤로 대학 내 캠퍼스는 낭만만 가득했다. 대학생이라는 타이틀만 있다면 사람들은 너그러웠고 취업을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신드롬 이후 전람회, 듀스, 김건모, 투투 등 발라드부터 힙합, 레게까지 다양한 음악을 소비했다.
패션도 화려해졌다. 당시 유니섹스 캐주얼 브랜드가 많이 나오면서 무채색 위주의 의상에서 다양한 컬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삐삐부터 휴대전화, PC통신부터 익스플로러까지 급속도로 발전하는 IT산업도 경험했다.
언제까지나 찬란할 것만 같았던 94세대 문화는 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급격히 퇴색했다. ‘수능 1세대’이면서 외환위기까지 겪으면서 어느새 그들에겐 죽을 사(死)자 94학번이란 타이틀이 붙여졌다. 이후 그들은 구조조정과 미국발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2011년의 유럽발 경제 위기를 겪어야 했고 그 사이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소비 주체가 됐다. 그러나 불황은 계속되고 있고 그들은 소비를 생각하기 전에 집 장만과 아이들 교육비를 걱정하고 있다.
94세대에 열광하는 것을 두고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감정의 사후 구성’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이 교수는 “힘들었던 시절도 사람들은 아름답게 추억한다”며 “장기 불황에 지쳐 있는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자신만의 화려했던 시절의 추억뿐”이라고 해석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94학번의 역할에 기대를 갖고 있다.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교차점이기 때문이다. 이미 문화적으로는 94세대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들은 90년대 대중문화를 이끌던 사람이고 인기 예능과 드라마를 만드는 작가들은 90년대 추억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조직 내에서도 94세대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위와 아래를 조절하는 중간자 역할을 책임지게 됐다는 것이다. 94학번 황정환씨는 개인 사업을 시작하기 전 다니던 회사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일화를 들려줬다. 어느 날 회사 간부가 퇴근시간 직전 황씨에게 중장기 전략에 대한 프레젠테이션(PT)을 갑작스럽게 지시했다. 팀장이었던 그가 PT 준비를 끝마친 시간은 밤 10시30분이었다. 둘러보니 10명의 팀원은 이미 퇴근한 상황이었다. 홀로 PT를 끝낸 황씨는 PT 내용보다 ‘부하 직원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간부에게 혼이 났다. 그러자 그는 “간부에게 ‘후배들에게 퇴근 지시를 내렸다’고 둘러댔다”고 말했다. 이런 게 94학번의 역할이었다.
당시 간부였던 사람은 민주화운동이 치열했던 윗세대였다. 그들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의 지휘 아래 집단 체제로 늘 움직였다. 그는 후배 팀장의 카리스마가 부족해 팀원을 이끌지 못했다고 바라봤다. 반대로 그의 팀원들은 동기 간에도 치열하게 경쟁을 펼쳐야 하는 아랫세대였다. 각자가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개인주의 체제였다. 그들은 팀장의 특별한 지시가 없었기에 퇴근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간부와 팀원 모두를 이해할 수 있는 건 낀 세대인 94학번 황씨뿐이었다.
사회가 황씨처럼 세대 간 격차를 줄이며 하나로 어우르는 리더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교수는 “94년 X세대의 X는 알 수 없는 존재라는 다소 부정적 의미를 갖고 있었지만 2013년 X는 무한대를 뜻하는 긍정적 의미로 발전했다”면서 “94세대는 대중문화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모든 세대를 어우르는 중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