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세대가 뜬다] 94학번 세 친구 ‘94년의 추억’ “아날로그의 끝과 디지털 시작 경험… 그땐 그랬지”
입력 2013-11-30 00:43 수정 2013-11-30 04:03
“주목받지 못했던 학번이었는데…. 94학번이 유일하게 주목을 받았던 것은 93년 무더위가 한창이던 8월 1차 수학능력시험을 봤던 그때뿐이었잖아.”
지난 27일 서울 쌍림동 CJ푸드월드에서 만난 이승관씨와 주철규씨, 황정환씨는 20여년 전 기억을 하나씩 끄집어냈다. 그들은 건국대 94학번 동창생이다.
현재 이씨는 대기업에서 팀장으로 재직 중이고 주씨와 황씨는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는 회사 대표다. 대학에 입학할 때는 수능 1세대, 1학년 때는 X세대 그리고 군대에 다녀와서는 비운의 IMF세대(외환위기로 취직이 어려웠던 세대)로 불렸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씨는 수능을 보기 전 학력고사를 한 번 경험했고 황씨는 두 번 경험했다는 것이다. 주씨는 수능만 봤다.
그들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94학번이 화제의 중심으로 급부상한 데 대해 놀라울 따름이라고 했다. 이씨는 “대학 동창들과 일년에 두 번씩 만나는데 그때마다 94년도로 돌아간다”면서 “우리만의 추억인 줄 알았더니 지금은 당시 우리의 모습에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들이 기억하는 ‘94년 세대’의 삶은 어땠을까. 이씨 등은 “짧은 시기에 참 많은 것이 달라지는 시기였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 입시를 앞둔 고교 때에는 수능과 함께 교과서까지 달라졌고, 내신 성적도 10등급에서 15등급으로 바뀌었다.
주씨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반길 만한 게 있었다며 ‘문화의 다양성’을 콕 집었다. 그는 “문민정부가 시작되면서 사전검열이 사라졌고 앨범에 꼭 넣어야 했던 건전가요도 없어졌다”면서 “일명 ‘길보드 차트’ 덕에 거리만 걸어도 어디서나 유행가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고 회상했다.
캠퍼스의 낭만도 있었다. 요즘 대학이 취업 준비를 위한 학원처럼 된 것과는 달랐다. 주씨는 “특히 월초가 좋았다”며 “하숙하는 친구들이 집에서 생활비를 받는 때여서 그때만 되면 같이 어울려 다니곤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놀고 즐기면서도 서로가 나중에 사람 노릇이나 제대로 할까 걱정돼 자조적으로 ‘쓰레기’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그들에게 동기는 경쟁 대상이 아니었고 함께 놀고 함께 공부하는 사이였다. 덕분에 공유할 추억도 많았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94학번 기자가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94학번이라 지금 좋은 건 무엇인가요?”
그들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자신의 기억을 덧입혀 풀어냈다. 주씨는 “아날로그의 끝과 디지털의 시작을 경험했다. 아날로그의 추억이 남아 있고 디지털을 처음 맞았을 때의 감격도 그대로 남아 있고, 그게 94학번의 혜택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94학번은 이해관계를 논하지 않고 친구들과 만날 수 있는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황씨는 ‘서로 위로할 수 있는 세대’여서 좋다고 했다. 그는 “초등·중학교 친구와는 공감대가 없고 고교 때 친구는 입시경쟁을 했던 기억뿐이지만 94년에 대학 때 만난 동창들은 지금 만나도 늘 기분이 좋다”며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서로를 위로할 줄 알고 아끼며 살아가는 친구들이 94학번 친구들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서윤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