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정치참여 바람직한가] 신학자들이 보는 政敎 분리
입력 2013-11-29 17:08
“정파 대변하는 전위부대 역할 안돼” “잘못 지적은 교회의 선지자적 사명”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북지역 일부 신부들의 시국미사를 둘러싸고 기독교계 안에서도 보수와 진보로 양분됐다. 이런 가운데 정교분리와 정치참여에 대한 논의가 다시 등장하면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기독교계 학자들은 정교분리와 정치참여를 어떻게 생각할까.
학자들은 대체로 예언자적 기능을 수행하는 차원에서 정치참여는 긍정적이지만 다양한 이념과 갈등이 존재하는 현 한국 사회에서 교회 지도자들의 발언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신원하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정교분리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 혹은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의미한다. 이 말은 본래 미국 헌법이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명시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흔히 교회가 정치적 발언이나 행동을 할 때 이것의 정당성을 논하는 목적으로 사용됐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를 바로 알 필요가 있다. 첫째, 정교분리라는 말은 국가가 특정 종교를 국교로 채택하거나 그 주장을 중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은 이민 사회이기 때문에 다양한 종교가 있었고 기독교 안에도 다양한 교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느 한 종교를 우대하다간 국가 통합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교분리는 국가 편에 해당하는 말이었지 교회가 정치 문제에 관여하지 말고 오직 종교 영역만 관여해야 한다는 것을 의도한 개념은 아니다.
둘째, 그런 점에서 정교분리는 교회가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금지하는 의미는 아니다. 교회는 정부든, 어떤 기관이든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잘못하면 그것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선지자적인 사명이기 때문이다. 미국 헌법에 정교분리 문구를 처음 삽입한 건국 선조들조차도 종교가 제공하는 도덕과 가치는 민주주의 국가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다고 생각했고, 종교인들은 그 가치를 반영하기 위해 소리를 높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교회나 목사가 국가의 명백한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문제 삼을 수 없다. 다만 특정 정파를 옹호하는 발언은 문제가 된다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세대, 계층, 지역별로 정치 이념과 견해가 현격히 다른 현실에서 목회자가 정치적 발언을 할 때는 깊은 고뇌가 필요하다. 의도한 것과 달리 성도나 교회의 화평을 깨뜨릴 단초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현재 대한민국은 정치과잉이다. 모든 것이 정치적 입장에서 가름되고 해석되고 있다. 그 입장은 개인의 입장이라기보다는 진영논리에 갇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가 무엇이 정의(正義)라고 이야기하며 나설 수 있겠는가.
최근 자신들의 입장을 확고히 보인 두 종교단체가 있다. 한 극단에서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일 것이고, 또 다른 극단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있을 것이다. 진보와 보수의 극단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이들은 정치행위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종교가 정치에 참여한다면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이 사회에서 종교의 초월적 힘이 아니고서는 정의가 설 수 없을 때이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적어도 종교의 이름으로 정치 가운데 들어가려면 이 정도의 기준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유감스럽지만 현재의 상황은 이런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 지금 상황은 종교가 극단적 정치 입장을 대변하는 전위부대나 행동대 같은 느낌일 뿐이다. 현재 한국의 문제가 종교의 틀 안에서 재생산되고 있을 뿐이다. 기독교인이 바른 시민의식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교회의 이름으로 나서야 한다면 좀 더 신중해야 할 것이다.
배덕만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최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 때문에 정교분리 혹은 교회의 정치참여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하지만 정교분리의 본래적 의미와 한국 개신교 역사를 고려할 때 정부와 여당이 정교분리를 주장하며 교회의 정치참여를 비판하는 것은 합리적 근거나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한국 개신교는 오랫동안 정치에 깊이 관여했고 우파정권과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는 교회의 정치참여 여부가 아니라 참여의 명분과 방법이다. 교회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단체행동을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지체 없이 행동해야 한다. 진실이 왜곡되고 국민이 현혹당할 때, 교회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크게 벌려야 한다. 상황을 직시하고 진리를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국가적 차원의 선거개입과 조작 의혹에 대한 증거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진실을 밝히는 대신 색깔논쟁과 정치탄압에 몰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이 미사라는 종교적 틀을 통해 현 정부의 실정을 지적하고 개혁을 촉구했다. 이것은 종교계의 정당한 정치적 표현이며 행동이다. 물론 이것이 교회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표현이나 행동방법은 아닐 것이다.
개신교가 천주교에 대해 침묵하거나 비판만 하는 것은 더 무책임하고 무지하며 심지어 위험한 처사다. 지금이야말로 교회가 세속의 정부를 향해 예언자적 기능을 수행할 때이기 때문이다.
백종국 경상대학교 교수
최근 천주교 박창신 원로신부의 정치적 발언으로 다시 정교분리와 교회의 정치참여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부든 목사든 누구나 정치적 견해를 나타낼 수 있고 누구도 이를 제한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결사와 집회의 자유도 보장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는 정교분리를 선언하고 있다. 이때의 정교분리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지, 종교인의 정치적 견해를 금지한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 기독교는 이미 반탁운동, 조찬기도회, 인권기도회, 반독재 시위, 친미반공집회, 공명선거운동, 기독당 창당 등 보수와 진보 공히 정치 활동을 해왔다. 새삼스레 어느 성직자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다른 발언을 했다고 해서 정교분리원칙을 어겼다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기독교인들의 진정한 관심사는 정치적 견해의 내용에 있다. 크리스천의 정치적 견해가 과연 하나님의 품성인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반영하고 있느냐이다. 이에 기초하는 것이면 설사 정치적 탄압이 기다린다 해도 반드시 말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일을 위해 부름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배치되는 발언이라면 기독교의 이름으로 해서는 안 된다. 복음의 문을 가로막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