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영성] 자선은 나를 위한 일

입력 2013-11-29 17:07

4세기 말 수도사로 살다가 안디옥 교회의 사제가 된 요한은 감동적인 설교를 전달해 성도들은 그를 ‘황금의 입’(크리소스톰)으로 불렀다. 당시 안디옥의 인구는 17만명, 기독교인은 10만명에 달했다. 그는 시민들의 10분의 1인 1만7000명 정도가 극빈자여서 먹을 것과 입을 것, 안락한 잠자리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는데 당시 안디옥의 부는 상위 10퍼센트 부자들이 갖고 있었다. 요한은 부자들의 사치와 남용, 빈자들을 돕지 않는 인색함을 비난했다. 마차에다 말 재갈과 자기 노예들의 표식인 팔찌를 금으로 만들어 부를 과시하고, 노동자에겐 값싼 임금을 주고 자신의 부를 축척하는 부자들을 맹렬히 꾸짖었다.

가난한 자를 위해 위탁 받은 것

요한은 부자가 자신의 부를 나누지 않고 부여잡고 있는 것이 선하지 않다고 가르쳤으며 그리스도인들은 검소와 절제, 금욕적인 삶을 살도록 설교하였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몸을 존중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그분이 헐벗을 때 그분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교회에서 비단옷을 입은 자에게 존경을 표하면서 춥고 헐벗은 자를 깔보는 행위를 멈추십시오. ‘이것은 나의 몸’이라고 말씀하신 분은 ‘굶주린 나를 보고 아무런 음식도 주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형제가 굶주림 속에 죽어가고 있을 때 성찬의 탁자 위에 금잔들이 가득 차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먼저 저들의 굶주림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주후 398년 요한이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로 뽑혀갔을 때 거기에는 5만명의 가난한 자들이 도움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려면 200만∼300만 파운드의 금이 필요했다. 그가 부임한 후 교회 재정을 꼼꼼히 검토하고 불필요한 모든 지출과 사치, 낭비를 없앴다. 그리고 그 돈으로 병원을 포함, 빈민구호소들을 짓고 운영하는 데 사용하였다. 그러나 교회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숫자가 많았고 성도들의 구제 헌금과 자선 행위는 턱없이 부족했다.

요한은 설교 시간에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여러분이 가진 물질이 당신 자신의 것이라고요? 그것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여러분에게 위탁된 것입니다. 비록 자신이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고 번 돈이거나,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일지라도 내 것이 아닙니다.” 요한은 성도들이 돈을 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교회에 구호소로 불리는 기관이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 각자 스스로 도시의 출입문으로 가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기다리고 환대하셔야 합니다. 교회의 구제에만 맡기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사랑이 두 가지 목표와 결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었습니까. 자선은 그것을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실천하는 사람마저도 유익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정에도 구호소를 만드십시오. 손님방들을 만들어 침대를 들여놓으시고 테이블과 등불을 구비하십시오. 여러분 집에서 가장 신실한 종을 보내서 장애자들, 거지들, 노숙자들을 데려오게 하십시오.” 그러나 불행하게도 수도원적 청빈한 삶을 살았던 요한을 따르지 않았던 속된 사제들, 그의 가르침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황실과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를 쫓아내고 유배 보내는 것으로 응답했다.

그러나 동시대에 발레리아 멜라니아(383∼439)와 같은 자선의 영웅도 있었다. 그녀는 로마 최고의 원로원 가문의 외동딸로 태어나 이탈리아, 시실리, 아프리카, 리비아, 스페인, 프랑스, 영국에 걸쳐 방대한 땅을 소유했다. 13살 때 사촌 발레리우스 파이니아누스와 결혼해 두 자녀를 낳았는데 남편 또한 엄청난 재산 상속자였다. 두 자녀가 일찍 병으로 죽고 난 후 멜라니아는 남편을 설득하여 금욕적인 삶을 결단하게 했다.

그녀의 단 하나의 꿈은 할머니 안토니아 멜라니아(대 멜라니아)처럼 세상을 포기하고 수도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할머니는 22세에 과부가 되었을 때 세상을 포기하고 이집트를 거쳐 예루살렘 감람산에 수도원과 수녀원을 짓고 기도와 말씀, 신학 연구 속에 살았다. 그 손녀 멜라니아 부부도 모든 재산을 팔아 금으로 바꾸어 구호소, 병원, 고아원, 교회, 수도원들로 보냈다. 불행을 당한 자들, 난민들을 먹이고 파산자들의 빚마저 대신 갚아주었다.

나의 포기로, 남을 살리는 것

무엇보다 우선했던 일은 2년에 걸쳐 8000명의 노예를 해방하고 자신들의 땅을 나누어준 일이다. 당시 원로원은 이 부부의 재산 포기를 단념시키려고 결의까지 했지만 그들은 뜻을 꺾지 않았고, 멜라니아는 25세에 로마를 떠나 남편과 시실리에서 함께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10년 후 이들은 그녀의 할머니가 살았던 감람산에 수도원과 수녀원을 세우고 같은 길을 걸어갔다. 자선의 역사 속에 멜라니아의 이름은 늘 한 페이지를 차지해왔고 앞으로도 그 자리는 변치 않을 것이다. 나의 포기로 남을 살리는 것, 그것이 수도자의 가는 길이다.

김진하 (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