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 없는 세상 위해 24년 ‘봉사 외길’… 故 기아대책 정정섭 회장의 삶과 신앙
입력 2013-11-28 21:48
28일 소천한 정정섭 기아대책 회장은 가난에서 벗어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가 고려대 경제학과에 진학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6·25 직후였던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70달러로 세계 최빈국 수준이었다. 정 회장은 “경제 정책가가 돼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밝혔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에 연구원으로 들어간 것도 같은 이유였다. 서울 구로동의 산업단지 조성, 민간투자 활성화를 위한 한국투자금융(현 하나투자금융) 설립, 민간 의료보험조합 결성 등이 그가 연구원 시절 참여한 사업이다.
일본 선교사가 되기 위해 23년의 전경련 생활에서 물러났으나, 오히려 일본 기아대책기구의 호리우치 목사를 만나 1989년 국제원조기구 설립에 도전하게 되었다. 정 회장은 생전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밝혔다.
“곰곰이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봤어요. 내가 겪은 굶주림과 가난,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결코 외면하는 법이 없으셨던 아버지와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어요. 내가 살아온 삶이 어쩌면 지금 이 일을 위한 하나님의 훈련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의 집안은 가난했다. 학교를 갈 여력도 없었다. 스물네 살 차이가 나는 큰 형이 벌어 초등학교를 다녔고, 형수가 싸주는 도시락을 먹었다. 기아대책이 국내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사업이 바로 도시락을 싸줄 사람도 없는 결식아동들을 위해 한 끼 밥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정 회장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기아대책을 시작하면서 ‘떡과 복음’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이 구호는 당시 기독교NGO의 활동을 교회가 인정하고 참여하는 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 밥그릇 모양의 저금통을 전국 교회로 보내 “전 세계의 굶주리는 이들에게 한 끼 밥을 먹이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설득했다.
기아대책에는 현재 후원회원 43만5207명, 자원봉사자 5만6900명, 기아봉사단 582명 등이 사역에 참여하고 있다. 국내 기독NGO 중 해외 구호활동과 현지 선교사의 사역을 가장 조화롭게 연결하고 있는 단체로 꼽힌다. 그는 지난달 본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아대책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믿습니다. 이 일을 제일 가까이에서 목격한 증인이 바로 저이기 때문에 이렇게 자신 있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없었다면 기아대책 사업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어떤 NGO가 전 세계 83개국에 580여명의 일꾼을 보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사역을 기뻐하시며 축복하고 계십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