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우리 아기

입력 2013-11-28 18:46


친구가 아침부터 기사를 하나 보내왔다. 중간에 인용된 글의 전문이 읽고 싶어 바로 검색해 봤다. 요즘 몇몇 육아 카페에서 많은 지지와 공감을 사고 있는 글. ‘너나 막 키우세요.’ 읽었을 때 드는 느낌은 한마디로 ‘불편함’이었다. 소중한 내 아기는 내 책임소관이니 내 뜻, 내 상식대로 키울 것이다? 잘못된 육아상식으로 예전에는 애들이 잘못되는 경우도 많았고 동네에 바보오빠들도 많았던 것 아니냐? 시대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니 못 배워서 잘 모르면 나서서 거들지도 참견하지도 말라?

알아야 할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 엄마들을 향해 ‘극성이다’, ‘유난스럽다’며 혀를 끌끌 차는 주변인들로 인해 심신이 피곤한 것은 이해한다. 아이를 방치하고 학대하는 금수보다 못한 부모들도 적지 않은 요즘, 사랑하는 내 아기를 위해 애면글면 애쓰는 모습은 흐뭇하기도 하고 감동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그 글은 많이 당혹스러웠다. 대체 ‘너나’는 누구일까? 육아에 대한 생각이 다른 남편? 시댁으로 대표되는 어른들? 아토피나 알레르기에 대한 잘못된 상식은 반드시 바로잡고 넘어갈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엄마인 나’와 ‘내 아기’를 괴롭히는 사람들로 규정짓다니. 슬쩍슬쩍 내비치는 연장자에 대한 멸시와 적대감은 솔직히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아이는 엄마아빠의 인간관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성장한다고 한다. 엄마아빠가 주변인들과 소통하며 잘 만들어 놓은 관계망을 받아든 아이는 그를 토대로 풍성한 인생 이야기를 써나가고 그렇지 못한 아이는 단절되고 불편한 인간관계 속에서 부대끼며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엄마와 친할아버지의 사이가, 또는 아빠와 외할머니의 사이가 원만하지 못해 아이가 그만큼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조손 간에 데면데면하게 지내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봤다. 그러니 ‘내 아기’라는 말로 선을 긋고 주변을 밀어내는 것은 진짜 아이를 위함이 아닌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은 당연히 엄마 몫이다. 그러나 아이에게 필요한 100%를 다 채울 수는 없다. 아이에게는 아빠의 사랑도, 조부모의 사랑도 필요하다. 파인 곳은 북돋아주고 솟은 곳은 다독여 평탄케 해주는 사랑.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빛을 내는 모두의 사랑. 그 사랑을 받는 아이, ‘우리 아기’는 ‘내 아기’보다 훨씬 행복하지 않을까? 날선 마음을 다스리고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