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deep] 2013년도 빗나갔는데… “2014년 주가 최고 2500” 또 장밋빛
입력 2013-11-28 18:13
반복되는 코스피 전망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을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 18일 한국거래소를 방문해 “5년 내에 코스피 3000 포인트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었다. 자신이 입고 있는 빨간 옷의 색깔이 주식시세 전광판에 그대로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덕담과 함께였다. 당시 코스피지수는 ‘대선 테마주’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2000선 안팎을 오르내리는 박스권에 갇혀 있었다. 2000선인 코스피지수가 5년간 1000포인트 뛰어오르려면 산술적으로 매년 8.5%의 상승세가 필요했다.
대통령의 공언에 대해 금융투자업계 리서치센터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국민일보가 당시 리서치센터장들에게 5년 내 3000선 돌파 전망을 문의한 결과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한국 경제의 잠재력과 글로벌 경기 회복세 등을 감안하면 연 8.5% 상승률은 충분히 가능한 영역이라는 분석이었다. 국민소득이 1만 달러 오를 때마다 코스피지수가 1000포인트 상승하는 흐름을 보였다며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을 참고하면 2016년쯤 3000선 정복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왔었다.
◇그들의 전망, 얼마나 용한가=“쩐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상반기 강세장을 준비하자” “새로운 비상을 시작하는 시기”…. 지난해 말 증권사들은 당장 올해부터 코스피지수가 상승세를 탈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주요 증권사 10곳이 전망한 올해 코스피지수의 등락 범위 평균은 1819∼2288이었다. 코스피지수가 2400선을 찍는다고 내다본 증권사도 있었다.
연말을 한 달 앞둔 28일, 이들의 전망은 퍽 낙관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올해 코스피지수는 지난 6월 25일 1780.63까지 추락했고, 지난달 30일 미국 양적완화(QE) 연장 기대감을 타고 최고점에 올랐지만 겨우 2059.58이었다. 당초 증권사들이 전망한 코스피지수 하단보다는 실제 최저치가 38포인트 낮았고, 상단에는 실제 최고치가 228포인트 못 미쳤다.
올해에는 좀 달라졌을까. 전망보다 실제 움직임이 부진했다는 교훈에도 불구하고 증권사들의 눈높이는 외려 더욱 높아졌다. 28일 국민일보가 조사한 결과 주요 10개 증권사는 내년 코스피지수가 평균 1903∼2336 범위에서 움직일 것으로 보고 있었다. 지난해보다 전망치 하단은 84포인트, 상단 전망치는 48포인트 높아졌다.
◇내년에는 다르다는 이유=이들의 과감한 낙관에도 근거는 있다. 글로벌 경기회복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우리투자증권은 2014년을 “본격적인 성장 궤도로 재진입하는 해”라고 규정했다. 이 증권사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내년에는 3%대를 회복할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 코스피지수가 최고 2500선에 이를 것으로 보는 KTB투자증권은 낮은 재고율과 저금리 누적효과, 민간 신용 개선효과 등이 각국의 성장률을 견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증권사의 김한진 연구원은 “연말을 지나면 글로벌 경기에 대한 신뢰가 커질 것”이라며 “내년 경기를 확장 국면으로 보는 데 이견이 없다”고 설명했다.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유동성이 안전자산인 채권에서 위험자산인 주식 쪽으로 이동하는 ‘그레이트 로테이션(Great Rotation·자금 대이동)’ 현상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그간 투자자들을 고심하게 한 유로존 재정위기는 바닥을 쳤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의 경제지표가 좋아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증권사들은 외국인 수급 동향이 개선되면서 우리나라 주식시장도 호황을 맞을 것으로 본다.
◇조심할 부분은=한편에서는 글로벌 경기회복이 한국 증시의 수혜로까지 연결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신영증권은 위험자산 선호 흐름이 계속되지만, 세계 증시에 대한 선호가 당장 한국 증시의 긍정적 흐름까지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 증권사의 이경수 연구원은 “전 세계 매출액 증가율이 ‘제로’인 상황에서 국가별 수익성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며 “환율 전쟁에서 승리한 선진국(미국·일본 등)과 패배할 수밖에 없는 이머징국가(한국·중국 등)는 증시뿐 아니라 펀더멘털 역시 디커플링(탈동조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천편일률적으로 반복되는 낙관적인 전망에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자성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상·하반기의 전망치를 따로 제시하는 증권사가 조금씩 줄어들고, 하단을 빼고 상단만을 ‘코스피 타깃’으로 제시하는 증권사가 늘어나는 것이다. “거래가 죽어버린 주식시장을 살리려면 오히려 의미 없는 코스피 밴드 전망을 그만둬야 한다”는 의견도 조금씩 흘러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투자업계의 한 임원은 “좋은 투자자라면 증권사들의 전망은 참고를 할 뿐, 의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든 증권사가 발간하는 투자참고자료에는 “투자의사결정은 전적으로 투자자 자신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뤄진다” “증권사는 이 자료에 의한 투자행위 결과에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이 임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도 코스피지수 5000선을 공약했다가 3000선으로 수정하기도 했다”며 “결국 코스피지수의 책임을 지는 것은 대통령도, 증권사도 아닌 투자자 자신”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