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서 쫓겨난 베를루스코니

입력 2013-11-28 18:05

총리만 세 차례 역임하며 20년간 이탈리아 정계를 주름잡아온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7) 전 총리가 27일(현지시간) 현 상원의원직을 잃었다. 이탈리아 상원은 이날 세금횡령 혐의로 실형 확정판결을 받은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상원의원직 박탈 여부를 묻는 투표를 실시해 찬성 192표, 반대 133표, 기권 2표로 가결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로마 사택 앞으로 모여든 지지자들에게 “민주주의에 애도를 표하게 되는 비통한 날”이라며 “하지만 정치적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유죄 확정 시 의정활동을 금지토록 한 법에 따라 진행된 투표 결과를 “정치적 박해”라고 규정하면서 자신의 포르차 이탈리아(전진 이탈리아)당을 계속 이끌겠다고 선언했다.

의회로부터 굴욕적으로 축출됐음에도 의회 밖에서 정치를 하겠단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뜻대로 될지 미지수다. 상원의원직 박탈로 그는 6년 동안 총선거에 출마하지 못한다. 또 면책권이 즉각 상실돼 현재 진행 중인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 등 다른 형사재판과 관련 체포될 수도 있다. 20년간 정치인생을 통틀어 최대 고비다. 정치적 입지도 많이 약해졌다. 상원의원직 박탈을 면하기 위해 연립정부 붕괴를 주도하면서 안젤리노 알파노 부총리 등 최측근이 등을 돌렸고, 이 일은 엔리코 레타 총리의 기반만 강화시켜줬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는 정치 퇴출을 재촉시키는 요인이다.

하지만 20년 동안 숱한 정치적 위기를 돌파해온 질긴 생명력을 만만히 봐선 안 된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뇌물수수, 성 추문, 사기 혐의로 16번 이상 기소됐지만 2011년까지 한 번도 유죄판결을 받지 않았다. 2010년 미성년자 성매매 의혹을 받은 ‘붕가붕가 파티’ 사건은 이듬해 정계 은퇴를 야기했지만 그는 1년도 채 안돼 복귀했다. 강한 흡인력은 최대 정치적 자산으로 온갖 기행적 행각에도 열혈 지지자를 수십년째 붙잡아 두고 있다. 이번 세금 횡령에 따른 4년 실형도 사면법에 따라 3년이 감형됐고, 고령인 점이 감안돼 나머지 1년은 사회봉사를 하면 그만이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