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獨 좌우정당도 협력하는데… 韓 대선 1년 돼도 ‘출구 없는 정쟁’

입력 2013-11-28 17:57 수정 2013-11-29 01:37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총선 2개월 만에 좌파 야당과의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했지만 대선을 치른 지 1년이 다 돼가도록 우리 정치권은 ‘출구 없는 정쟁(政爭)’에만 몰두하고 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군사독재 시절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초당적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한 우리 정치문화 자체가 근본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정부 탄생 이래 여야는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서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치킨게임’만 벌여 왔다. 정부조직법 논란으로 새 정부는 한 달 이상 지각 출범해야 했고, 이후 여야는 국가기관의 대선개입과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논란으로 사사건건 대립해 왔다. 여권은 야당을 설득하는 대신 힘으로 밀어붙이거나 이념 갈등을 부추기며 공격하기에 바빴다. 야당은 사실상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국정의 골간인 민생법안 통과에도 협조하지 않았다. 결국 정치권은 정기국회 파행을 거쳐 내년도 예산안 통과조차 장담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반면 지난 9월 총선을 치렀던 독일에선 원내 최대 의석수를 기록하고도 과반 의석에서 불과 5석이 부족한 ‘기독민주연합(CDU)’이 제2당인 사회민주당(SPD)을 설득해 마침내 대연정에 합의했다.

양당의 합의사항을 보면 새 내각 각료 수는 CDU가 5개, SPD 등이 9개로 야당이 훨씬 많다. 그만큼 여당이 야당의 요구를 수용했고, 서로 간 정책 조율에서도 대거 양보하며 타협했다는 의미다.

독일식 초당적 협력 정치는 지난 64년 동안 보수·진보 가운데 어떤 세력이 집권하든 서로 타협을 계속하며 국가를 이끌어온 데서 연유한다. 국영건강보험, 금융규제, 노동시간 축소 및 일자리 대타협 등 독일 정치세력 간 합의의 업적은 수도 없이 많다. 독일은 현실정치를 통해 ‘보수정당의 진보화와 진보정당의 보수화’라는 세계적 정치 조류를 선도하기도 했다. 보수세력이 집권해도 진보세력의 좌파정책 중 꼭 필요한 부분을 계승했고, 진보세력 역시 집권 후 외교안보·경제발전 분야에선 보수정책을 유지해온 것이다. 이번 대연정 합의에서도 보수세력은 SPD가 내세운 요구조건 중 세금 인상을 제외한 대부분의 정책을 수용했다.

우리 정치에서 독일식 타협과 양보가 불가능한 것은 정치 시스템 상의 차이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독일이 아무리 다수파라도 의회 과반의석을 갖지 못하면 집권할 수 없는 의원내각제인 반면 우리는 ‘여소야대’ 상황에서도 행정부 구성이 가능한 대통령중심제라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독일의 여야는 총선을 치르면 가장 먼저 서로의 정책을 연구한다. 양보할 수 있는 게 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반면 우리 정치세력은 집권하면 ‘어떤 걸 밀어붙일 것인지’ 우선순위를 정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야당은 양보가 아닌 압박의 대상이 된다. 이렇다 보니 야당은 대통령을 정쟁 파트너로, 여당은 대통령에 종속되는 정당으로 기묘한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정치 전문가들 중에는 현재의 권력 체제로는 대통령과 의회 권력의 상시적 충돌을 방지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로가 대립할 때 이를 조정할 수 있는 미국식 상·하원 제도나 의원내각제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상원이 행정부와의 균형을 내세우는 원로원 역할을, 하원은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반대 역할을 각각 맡는다.

정상 리더십의 차이에서 한국과 독일의 정치상황을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메르켈 총리는 ‘철의 여인’으로 불리지만 때로는 야당의 요구도 과감하게 수용한다. 반면 박 대통령은 원칙과 뚝심으로 대표되는 ‘강철 리더십’이 트레이드마크다. 타협보다 상대를 자신의 원칙 범주에 들어오게 만드는 정치에 능숙하다는 평가다.

신창호 남혁상 유성열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