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중·일 사이에서 제 위치 못 찾는 한국외교
입력 2013-11-28 18:51
지루한 정쟁 접고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때
미국 B-52 폭격기의 중국 방공식별구역 전격 비행으로 표출된 최근 한반도 주변 정세가 심상치 않다. 당장 전쟁이나 분쟁이 가시화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를 둘러싼 미·중·일의 각축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28일 열린 한·중 국방전략대화에서도 중국은 우리 측의 방공식별구역 시정 요구를 거절해 갈등은 증폭일로에 있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이어도를 자국의 방공식별구역에 포함시킨 중국의 야욕은 간단치 않다. 센카쿠 열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려는 것과 함께 미국이 과거 일방적으로 설정한 동중국해(제주 남해) 방공식별구역을 흔들어보자는 것이다. 이 같은 중국의 의도를 모를 리 없는 미국이 강경 대응할 경우 한반도가 전쟁터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더욱 심각한 사태는 중국이 이번 조치에 이어 방공식별구역을 서해에도 선포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어도 상공의 무단침입 의지와는 차원이 다른 직접적 위협이 우리나라 한복판에서 재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자칫 미국과 중국의 패권 싸움에 한반도가 새우등 터지는 비극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북핵 문제 해결도 쉽지 않은 일인데 야망을 노골화하며 무력시위를 벌이는 중국의 강공에 우리는 냉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통적 우방인 미국을 고리로 한·미·일 삼각동맹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중국과도 새로운 갈등을 유발하지 말아야 한다. 마침 중국의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 선포로 위기를 느낀 미국이 한·일 관계의 중재자로 나서겠다고 천명한 마당이니 만큼 위기를 기회로 삼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강조하고 싶은 대목은 우리 정부가 지금까지 국익이 걸린 영공과 영해 문제에 지나치게 미온적이고 소극적으로 대처해 온 것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어도뿐 아니라 우리 영토가 분명한 거제도 남쪽의 홍도가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군조차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일본 측에 수차례 수정을 요구했다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은 시늉만 했거나 관계 부처 간 공조가 되지 않았다는 방증이 아닌지 되묻고 싶다.
냉정한 국제관계 속에서 상대국과의 관계가 하루아침에 급변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은 외교가의 상식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도 이제 내치 못지않게 외교 역량을 강화하는 데 남다른 열정과 노력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본다. 정국을 주도하는 세력들이 결론도 없고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정치공방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사이 동북아에서 우리의 위상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는 현실이 눈에 보이지 않는가.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로 한반도 주변 정세는 안갯속을 걸어가고 있다. 지난 6월 중국 시진핑 주석과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합의한 신형대국관계 수립 선언이 아직은 유효한 만큼 화해의 길로 접어들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한반도가 격랑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