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장군묘역 마다한 채명신의 참된 군인정신

입력 2013-11-28 18:35

초대 주월(베트남) 한국군사령관을 지낸 채명신 예비역 중장이 28일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사병묘역에 안장됐다. 국립대전현충원 장군묘역에 묻힐 수 있었지만 “사랑하는 파월장병 곁에 묻어 달라”는 고인 유지에 따라 서울현충원 사병묘역에 안장된 것이다. 건군 사상 국군 장성이 사병묘역에 묻힌 것은 처음이다. 고인의 남다른 전우애를 느낄 수 있다.

6·25전쟁 때 소위로 참전했던 고인은 1961년 5·16군사쿠데타에 주도적으로 가담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떠올랐다. 65년 8월부터 69년 5월까지 총탄과 포탄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장병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하지만 그는 72년 박 전 대통령이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단행한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채 장군은 “각하, 이러다 제명에 못 돌아가십니다”라는 직언까지 했다고 한다. 목에 비수가 들어와도 바른말은 한다는 참된 군인정신을 보여준 것이다. 10·26사태 소식을 듣고는 자신의 직언이 마음에 걸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일화는 고인의 따뜻한 품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주월 사령관으로 근무할 당시 귀국할 때마다 베트남에서 전사한 장병묘역을 찾아가 오열한 모습은 많은 군인들에게 진정한 지휘관의 길을 깨닫게 했다. 이런 삶을 유지했기에 ‘월남전의 영웅’이 8평인 장군묘역을 마다하고 1평인 사병묘역을 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이 이날 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 ‘육군장’에서 조사를 통해 ‘불멸의 군인’ ‘영원한 지휘관’ ‘시대의 거인’이라고 흠모한 것은 고인을 기리는 데 조금도 손색없는 추모사다.

채 장군이 정치군인의 길을 걸었다면 그의 앞에는 대장 진급에 이어 탄탄대로가 열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역사와 민족 앞에 떳떳한 길을 선택했다. 그 길이 진정 국가와 군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리라. 국가의 안위와 미래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전투구를 일삼는 정치권, 영토 수호에 허점을 드러낸 군인들, 사리사욕에 눈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고인의 숭고한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