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인간을 보듬다… 2013년 노벨문학상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

입력 2013-11-28 18:33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에도 그리고 장례식에도 나는 집에 가지 않았다. 내게는 어린 자식이 둘 있었는데 벤쿠버에는 아이를 맡길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거기까지 갈 경비가 없었고 내 남편은 의례적인 행동을 경멸했다. 하지만 그것이 왜 그의 탓이겠는가. 내 생각도 같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혹은 우리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언제나 그런다.”(‘디어 라이프’ 마지막 부분)

‘디어 라이프’(문학동네)는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앨리스 먼로(82)가 지난해 출간한 최신작이자 마지막 작품집이다. 이 작품집을 끝으로 절필 선언을 했기 때문. “현대 단편소설의 대가”라는 노벨문학상 위원회의 찬사에 걸맞은 그의 정교한 단편들은 우리들 삶의 심연과 비밀을 한 순간에 드러낸다. 그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쓴 표제작은 마을에서 미친 사람으로 알려진 네터필드 노부인이 마당 잔디밭 유모차에서 잠들어 있던 ‘나’에게 접근해오자 어머니가 허둥대며 달려와 어린 ‘나’를 안고 집안으로 피신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처음에는 그쯤에서 끝이 났다. 어머니가 숨어 있는 동안 네터필드 부인이 유리창에 얼굴과 손을 갖다 댔다는 것에서. 하지만 나중에는 그냥 쳐다보았다는 내용 뒤에 새로운 결말이 덧붙여졌다. 조바심을 내고 성질을 부리며 문을 흔들고 꽝꽝 쳤다고 했다.”(‘디어 라이프’)

어머니의 기억을 통해 재생된 이 사건의 전말을 작가는 ‘죽기 살기로 나를 낚아챈’ 어머니의 입장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네퍼필드 부인의 입장에서 재해석해낸다. 네퍼필드 부인이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던 것은 그 집이 한 때 그녀 자신이 집이었기 때문일 거라고. 그러면서 작가는 불쑥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에 대해 “이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았던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고 말하면서 “실은 어머니 장례식에 불참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먼로는 이렇듯 시간과 기억이 끊임없이 타협하는 지점들을 발견해 내는 한편 그 지점이 ‘지금의 당신’과 어떻게 충돌하고 있는지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는다거나, 지나온 궤적을 회상하며 한편으로는 상실감을 느끼면서도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점은 그에게 붙여진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

여성이자 어머니로서 가정과 아이를 돌보는 일과 글 쓰는 일을 병행해온 그는, 한때 페미니즘 계열 작가가 아닌가 하는 시선을 받기도 했다. 이는 작중 화자나 주인공이 주로 여성이라는 점과 작품에서 20세기 후반 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는데 연유한다. 하지만 그는 작품을 통해 현실을 고발하고 바꾸려 하기보다는, 언어로 포착하기 어려운 작중 인물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진 또 하나의 특징은 모호함이다. 그는 작중 인물의 행동이나 심리가 과거의 어떤 경험에서 왔는지 그 배경이나 이유를 정확하기 드러내지 않고 모호하고 중의적인 표현 속에 감춘다. 이런 문체는 독자가 스스로 질문하고 미루어 짐작하고 생각하게 한다.

그동안의 작품이 그렇듯 이 작품집의 단편들도 작가의 고향인 캐나다 온타리오주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2012년 오헨리상 수상작 ‘코리’, 언니의 익사 사고 후 평생을 그 기억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동생을 그린 ‘자갈’ 등 14편의 수록작에서 그가 다루고 있는 것은 결국 인간 그 자체이다.

‘디어 라이프’ 출간 이후 절필 선언을 했으니 먼로를 새 작품으로 만나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해 보인다. 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노벨상 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혹시 마음이 바뀔지도 모른다”고 했으니, 혹시 모를 일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