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하태림 (10) 동행하시는 하나님, 낮은 곳 봉사 때마다 은총을

입력 2013-11-28 17:13


지역아동센터를 열기 전 많은 고민을 했다. 단지 아이들을 보살피겠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 구체적인 교육 방법은 생각하지 못했다. 잘못하면 아이들을 망칠 수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우선 지역아동센터에 오는 아이들의 특징을 파악했다. 아이들은 대부분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혹은 차상위계층에 속해 있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 탓에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때문에 자신감이 결여돼 있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하교 후에 와서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컴퓨터와 책상, 책이 필요했다. 정부의 지원을 받을 여건이 되지 않아 주변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하나님은 내게 인복을 주셨다. 여기저기서 후원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돈뿐 아니라 쌀을 보내주시는 분, 직접 담근 된장을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감사함을 잊지 않고 아이들을 위해 더욱 헌신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서로 감싸안는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2010년 11월 아동센터의 문을 열었다.

소문을 듣고 인근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나와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다. 그들에게는 아동센터로 오는 것 자체가 용기였다. 그래도 아이들은 점차 아동센터로 오는 것에 익숙해져갔다. 자신들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 기쁜 듯 보였다. 마음대로 책을 읽을 수 있고, 친구와 수다를 떨 수 있는 자유. 그 나이에 당연히 누려야 할 특권임에도 본인들의 탓이 아닌 가난 때문에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웠다. 사회복지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영어와 수학 등 교과목을 가르쳤다. 공부를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아이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기에 부족했다. 고민했다. 그때 머리를 스치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음악’이었다.

전신마비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당시 삭막하던 내 일상에 기쁨을 준 것은 병원을 방문한 청년들의 찬양이었다. 고려대병원에서 사랑의선교회 활동을 하면서 중점을 뒀던 것도 환자들에게 찬양을 들려준 것이었다. 그 찬양은 병마와 싸우며 심신이 지친 환자들은 물론 찬양을 부르는 사랑의선교회 회원들에게도 힘이 됐다. 당장 건물 지하에 음악실을 만들었다. 후원해주시는 분들의 도움으로 드럼과 기타, 키보드, 통기타 등을 구했다. 일단 일은 벌였는데 음악을 가르쳐줄 선생님이 없었다. 그러나 걱정은 안 됐다. 하나님은 내가 그의 일을 할 때 항상 필요를 채우셨다.

사랑의선교회 활동을 하던 1994년, 병원비를 내지 못하는 환자들을 위한 성금을 모을 목적으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강당을 빌려 찬양 음악회를 한 적이 있다. 기획 당시 선교회 회원들은 두 손을 들고 말렸다. 누가 출연하고, 몇 명이나 보러 오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자신 있었다. 나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이 동행하실 것을 알기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음악회는 대성공이었다. 복음성가 가수 ‘빛과소금’과 김덕현 집사가 흔쾌히 출연을 허락했다. 에클레시아중창단과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무팀, 샤론발레단도 동참했다. 2000여명의 관객도 함께했다. 이렇게 때마다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아이들을 위한 음악 선생님을 구할 좋은 방법도 알게 하셨다. 바로 ‘서울특별시 동행 프로젝트’다. 대학생 봉사자들이 각자의 재능을 기부하는 프로그램이다. 전자기타와 키보드 등 악기를 가르쳐줄 대학생 봉사자들은 쉽게 구해졌다. 악기를 처음 손에 잡은 아이들의 입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정리=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