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도마뱀·얼룩말 사연에 슬쩍 곁들인 사람 이야기
입력 2013-11-28 17:26
꼬리 치는 당신/권혁웅/마음산책
시인 권혁웅(46)이 지금까지 펴낸 5권의 시집엔 동물들이 수시로 고개를 내밀어 사람의 삶을 은유하고 있는 게 하나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예컨대 이런 시다. “바닷길이 막히자 바이칼은 큰 어항이 되었다 신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민물바다표범인 네르파를 거기에 넣어두고는, 골로미양카라는 물고기를 먹이로 주었다 골로미양카는 몸의 3분의 1이 기름이어서, 깊은 물속에서도 살 수 있지만 물 밖에 나오면 녹아버린다 마가린을 물에 말아 먹는 네르파의 재롱이란! 그것이 신이 보시기에 좋았다”(‘바이칼-야생동물 보호구역 10’ 부분)
육체로 시작해 육체로 마감하는 온갖 동물의 본능과 몸짓이 그의 시작(詩作)에 자극이 되었던 것인데 이 책은 그가 탐구한 각종 동물에 대한 탐구를 시적 영감으로 집대성한 저작이다. “남은 꼬리가 꿈틀대는 동안 도마뱀은 달아나지. 잘린 꼬리가 자라는 동안 도마뱀은 생식도 성장도 하지 않는다. 그이가 당신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고 아파하지 마시길. 당신이 그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동안 당신은 살아남은 거야. 꼬리 치는 당신도 아팠다고.”(‘꼬리 치는 당신도 아팠다고’)
놀라운 것은 권혁웅이 무려 500여 종의 동물을 망라하면서 그 개체들이 살아가는 갖가지 방식의 삶을 인간의 삶과 비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금세 공감하겠지만, 그들도 웃고 울고 배설하고 공포를 느끼고 외로움을 느끼는 건 사람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동물 이야기를 하면서 슬쩍 사람 이야기를 끼워 넣는 변신담이 이 결과물인데 한 페이지에 한 동물씩 배치하고 그 동물의 수채화를 곁들여 사전을 보는 듯하다.
“꽃등심 속의 꽃은 우리 몸에서 빠져 나가지 않는 지방이라고 합니다. 어떤 꽃은 고지혈과 당뇨를 불러오기도 하지요. 얼룩말은 털을 깎아도 피부에 무늬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어떤 얼룩은 문신과 비슷해서 면도 따위로는 흔적을 지울 수 없지요. 당신의 아랫배가 조금 늘어났거나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남았을 때, 기억하세요. 그것이 첫 사랑의 흔적이랍니다.”(‘첫 사랑은 몸 안에 있었네’)
결국 권혁웅이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것의 만감(萬感)일 터이다. 시와 에세이의 중간쯤의 문체에 담아낸 그를 우리 문단의 독보적인 동물학자로 불러도 무방하리라.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