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에 우는 여성들] 모던 걸·된장녀·김치녀… 뿌리깊은 비하
입력 2013-11-28 05:00
‘돈만 만흐면 누구나 조하요(돈만 많으면 누구나 좋아요). 나는 처녀입니다.’ ‘나는 외국 류학생하고 결혼하고저 합니다(나는 외국 유학생과 결혼하고자 합니다).’ ‘나는 문화주택만 지여주는 이면 일흔살도 괜찬어요(나는 문화주택만 지어주는 이면 일흔 살도 괜찮아요).’
1930년 한 신문에 실린 시사풍자만화는 무릎 위로 올라오는 미니스커트에 서양식 하이힐을 신은 여성들을 그렸다. 그리고 여성의 다리에 위와 같은 문구를 적었다. 요즘 인터넷에서 ‘문란하다’거나 ‘속물’이라는 이미지를 덧칠하며 여성을 비하하는 악성 댓글과 별로 다를 게 없다. 한국 여성은 이런 편견을 감내해온 지독한 수난사를 갖고 있다.
요즘 온라인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김치녀’는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를 일삼거나 권리만을 과도하게 주장하는 한국 여성을 일컫는 신조어다. 2007년 등장한 ‘된장녀’와 비슷한 맥락에서 나왔다. 여성에 대한 혐오를 내포한 단어는 셀 수 없이 많다. 한국 여자들은 왜, 그리고 언제부터 보편적인 미움을 받게 됐을까.
단순한 여성 차별 행위가 여성 혐오로 이어지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 공부하고 자신을 치장하는 ‘신(新)여성’이 여성들의 이상향으로 떠올랐다. 소위 ‘모던 걸’이라 불리던 이들을 일부 사람들은 ‘못된 걸’이라고 비하해 불렀다. 20세기 초까지 일반적 기혼 여성을 일컫던 ‘아줌마’에도 1950년대를 지나면서 ‘억척스럽다’ ‘안하무인이다’ 등 경멸의 의미가 더해졌다.
21세기 들어 페미니즘이 대중화되고 양성평등 인식이 확산됐다. ‘알파걸’ 등 남성보다 능력이 좋은 여성을 일컫는 단어도 등장했다. 그러자 여성 혐오 현상은 수백년간 유지돼온 남녀 위계질서의 변동에 대한 반작용으로 더욱 극대화됐다.
여성혐오론자들은 “한국 여성은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가사노동이나 출산·육아 의무도 지기 싫어하며 연애나 결혼을 통해 사회적 계급 상승을 꾀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국 남성이 징병 취업 결혼 등으로 압박받을 때 여성들은 이 같은 문제를 보다 쉽게 통과한다는 역차별 담론도 나온다.
이에 대해 서울대 여성연구소 김수진 책임연구원은 27일 “현재의 여성 혐오 현상은 독일파시즘에서 나타났던 반유대주의와 형식적으로 유사한 심리구조를 보여준다”며 “계급적·인종주의적 갈등과 문제의 궁극적 이유를 유대인에게 돌렸듯 극단적 경쟁사회가 낳은 사회 불안과 좌절의 진원을 여성 전체에게로 돌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경 박요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