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 방향타가 없다] (하) 거시적 안목과 전략이 필요하다
입력 2013-11-27 17:52 수정 2013-11-27 21:53
문제 터지면 임기응변 급급… 외교안보라인 ‘큰 그림’ 안보여
박근혜정부 출범 9개월이 지났다. 앞으로의 4년여 임기 동안 동북아시아에선 미국의 아시아 개입, 중국의 팽창, 일본의 군사대국화 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정부는 동북아에서 요동치는 안보 질서에 역행하지 않고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외교적 해법을 하루 빨리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거시적이고 구체적인 대외전략 필요=그러나 한국 외교에선 이런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돌발적 사안에 대해 임기응변식의 대응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을 접견해 매우 강경한 어조로 일본을 비판한 것에 적지 않게 놀랐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이후 미국의 조야에선 한·일 관계 악화의 책임이 한국에도 일부 있는 것 아니냐는 기류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27일 “우리 정상이 제3국에게 한·일 관계를 직접 강한 톤으로 언급한 것은 바람직한 게 아니다. 정상이 최전방에 직접 나서면 향후 정부가 쓸 레버리지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이는 외교안보라인 참모들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대외정책 전반에서 커다란 구상만 제시하고 단계별로 구체적인 각론과 해법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현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거시 전략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미 동맹과 친중 노선이 부딪힐 때 어느 쪽을 더 중시해야 하는지, 한·일 관계를 방치할 것인지 등 우리 국익과 직결된 사안이 도사리고 있는데 ‘신뢰외교 원칙론’ 이외에는 마땅한 대외전략이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다.
◇협업시스템, 독주시스템 엇갈린 평가=일각에선 시스템의 효용성 문제를 지적한다.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외교안보수석실의 업무 분장이 불분명해 종합적 외교전략 수립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군 출신이자 장관급인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쪽으로 균형추가 기울면서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역할은 거의 눈에 띄지 않게 됐다는 시각도 있다. 김 실장은 중국과의 고위급 전략대화나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과의 대화에 우리 측 대표로 참석하고 있다. 김 실장은 군 출신임에도 외교 현안 전반에 폭넓은 이해와 안목을 갖췄지만 행여 ‘안보 중심주의’ 시각으로 미국, 중국과의 관계를 다룰 경우 복잡한 외교적 현실을 간과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 정부 외교안보 라인이 분담이 제대로 이뤄진 협업체제냐, 아니면 독주체제냐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일각에선 동북아평화협력구상,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등 큰 그림을 입안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정부 대북·대외정책을 사실상 ‘원톱’으로 주도하면서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야 할 통일부는 설 자리가 마땅치 않아졌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전략적 마인드가 관건=결국 모든 문제는 외교안보 라인이 얼마나 전략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마인드를 갖추고 외교 현안에 대처할 수 있느냐로 모아진다. 이런 점에서 일부에선 현 외교안보 라인에 눈에 띄는 전략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안보 라인의 수장들이 정통 행정관료와 군 출신 인사들인 만큼 상호 보완하는 차원의 전략가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공과(功過)를 차치하고 보면 과거 정부에는 이종석 국가안보회의(NSC) 사무차장, 박선원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 등이 있었다.
보수성향의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현 정부의 최대 난점은 청와대 안에 전략가가 없다는 것”이라며 “외교안보 정책의 큰 그림과 구체적인 전략을 짜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한·미·중 3국이 모처럼 북한 문제에 한목소리를 냈을 때 3자 관계를 지속적으로 결집시키는 고민과 노력을 했어야 하는데, 이를 ‘신뢰외교의 성과’라고 홍보하는 데 그쳤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른 인사도 “정부가 미국, 중국과의 양자 관계는 중시하지만 미·중을 엮어서 복합적으로 보는 시각이 약하다”며 “관료는 단기적 현안 해결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데, 균형을 위해 전략적 마인드가 있는 인사들을 보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반론도 존재한다. 대통령이 특정 사안에 대해 최전방에 나서는 것은 그 사안을 우리 정부가 그만큼 핵심적인 사안으로 간주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고, 외교안보라인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과거 어느 정부에서도 있어 왔고 해결 노력 역시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전 정부의 한 고위직 인사는 “관료 출신은 단기적, 학자 출신은 전략적이라는 단순도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인사들의 구성 문제보다는 외교적 현안들이 밀려오는데 여기서 우선순위를 어떻게 매길지, 양자 또는 다자 관계의 느슨함을 어떻게 방지하고 힘을 실어줄 것인지에 대해 대통령 참모들이 종합적으로 판단할 필요성은 있다”고 말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