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식별구역’ 긴장 고조] 美, 中에 초반부터 안밀리겠다

입력 2013-11-27 17:43 수정 2013-11-28 00:38


미국이 중국에 사전 통보도 하지 않은 채 B-52 전략폭격기를 동중국해 상공으로 비행시킨 건 중국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지난 6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협력’ 쪽으로 향하던 미·중 관계의 불확실성도 높아졌다.

미 국방부는 26일(현지시간) 오래전부터 계획돼온 정규 훈련의 일환이라고 설명했지만 전략폭격기 출동이라는 ‘위력과시’를 통해 중국이 23일 발표한 방공식별구역 설정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는 분석이다. 미 국방부 관리는 “이는 국제 해·공역에서 운항의 자유를 위협하는 중국의 시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분명한 메시지”라고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여기에는 중국의 ‘일방적인’ 조치를 좌시할 경우 중국이 더욱 대담해질 것이고, 일본 등 주변국은 물론 미국이 누려온 군사전략적 이해도 해칠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게 워싱턴 소식통들의 분석이다.

아울러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 정부가 방공식별구역 안에 포함된 분쟁지인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즉시 항공기와 함정을 증파하는 등 중국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도록 힘을 북돋아주려는 측면도 강하다. 확실한 기선제압을 하지 않을 경우 일본뿐 아니라 대만 한국 등 다른 역내 우방들의 불안을 가중시켜 미국의 ‘안보 약속’에 대한 신뢰를 낮출 것이라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미국은 이러한 ‘의도적인 무시’ 행위를 반복해 중국이 선포한 방공식별구역 무효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의 군사·외교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국의 조치에 군사적으로 대응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긴장이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관측한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새로운 미국안보센터’ 패트릭 크로닌 아시아분석가는 “중국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고 미국이나 일본도 그럴 것”이라며 “이에 따라 향후 수년간 어떤 형식의 우발적인 충돌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양국의 갈등이 확전할 경우 현재 미·중 간에 논의되고 있는 군사협력 현안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물론 내년 중국군이 사상 처음 참가하는 ‘림팩’(2년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해상훈련)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은 당장 다음 주로 예정된 조 바이든 부통령의 베이징 방문 때 방공식별구역 설정 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다룰 가능성이 커 중국 측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주목된다. 바이든 부통령은 시진핑 주석 등 중국 정부 요인을 두루 만날 예정이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