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하경제 300조원이라는데 양성화 방안 뭔가

입력 2013-11-27 17:21

공평과세와 조세정의 담보할 근본적 대책 내놓아야

지난해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가 무려 314조원에 달하는데도 정부가 세금을 절반도 징수하지 못했다는 LG경제연구원의 보고서는 가히 충격적이다. 탈루 탈세 관행 및 검은 뒷거래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뿌리 깊은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납세의무를 다했던 봉급생활자들은 지난해 정부예산 325조원에 맞먹는 지하경제 규모에 허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유리지갑’이라는 봉급생활자를 대상으로 ‘거위의 털 뽑기’식 증세를 추진하고, 소득공제 혜택마저 감축한 조세정책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선 국민들은 지하경제 규모가 어떻게 이 정도에 달하게 되었고, 정부는 그동안 뭘 했느냐고 묻고 있다. 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정부는 과세 가능한 최대세수의 불과 48%만 세금으로 걷었다. 이는 최대세수의 70%를 징수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물론 중국 브라질 등 신흥국가의 평균 징수율 69%에도 못 미친다. 정부가 철저한 세원 발굴이나 징세를 하지 않고 지하경제를 방치해온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한마디로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세정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이뿐 아니다. 보고서에 드러난 자영업자의 탈세는 기가 막힌다. 1999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 지하경제의 44%가 자영업자 탈세로 OECD 평균 22.2%의 배에 달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자영업 부문의 탈세 비중도 OECD 국가 최고인 3%였다. 지난해 자영업자 지하경제 규모는 139조2000억이며, 탈세만 38조2000억원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동안 고소득 자영업자 탈세는 수없이 지적돼 왔다. 이번에도 의사나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과 요식업, 골프연습장 등 현금수입 업종의 소득탈루율이 57%로 드러났다. 100만원을 벌면 57만원을 미신고했다. 문제는 감소세를 보이던 자영업자 소득탈루율이 2009년 이후 별로 감소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2009년 첫 발행된 5만원 신권은 유통되기보다는 사금고로 들어가거나 검은 뒷거래의 편의성만 제공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 등 비현실적인 과세정책도 한몫했다.

지하경제는 비단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하경제 양성화는 지난해 박근혜 대선 후보의 공약이었다. 국민들은 새정부 출범 후 대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지하경제 양성화만으로도 증세 없이 기초연금 등 복지 재원을 충당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정부가 발표한 국세기본법 등 세법 개정안은 실망스럽다. 해외법인 자산의 거래자료 및 현금영수증 의무 발급, 탈세 신고포상금 지급 등 미시적 대책뿐이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유도할 근본적 대책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정부는 이제라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양성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공정과세와 조세정의 실현이 목표 아닌가. 더 이상 성실한 납세자들이 역차별받아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