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한민수] 기업으로 살아남기

입력 2013-11-27 17:22


1991년 명문대 경영학과 졸업을 앞둔 고교 선배는 대한전선이라는 회사를 들어가겠다고 했다. 유수의 대기업을 골라가던 시절이어서 “왜?”라고 묻자 선배는 알짜배기 회사라며 자랑했다. 실제로 대한전선은 1955년 창사 이래 2008년까지 54년간 단 한 번도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는, 재계를 대표하는 우량 중견그룹이었다. 삼성, 금성사(현 LG전자)와 함께 전자산업을 이끌면서 1950∼1960년대 서열 4∼5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랬던 이 회사가 오너 3세가 스스로 경영권을 포기하는 지경에 처했다. 60년대 당시 재계 6위에 올랐던 동양그룹은 더 심각하다. 그룹은 해체될 위기에 몰렸고, 오너들은 당국의 수사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각종 고충 털어놓는 기업인들

지난달 1일 산업부장으로 보임한 이후 많은 기업의 임원들을 만났다. 해운업체 전무는 불황의 끝이 어딘지 모르겠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건설사 상무의 얼굴에서는 밝은 빛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고충도 다양했다. 굴지의 대기업 임원은 국회에서 외국인투자촉진법을 처리해주지 않아 대규모 투자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식품업체 상무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000억원대 과징금을 맞는 바람에 영업이익이 1억원에 그쳤다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20대 안팎의 그룹 사람들은 거의 본 거 같다. 그렇다면 몇 개의 기업이 현 경제상황에 만족했을 것 같은가? 1, 2위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마저도 마냥 즐거운 거 같지 않았다. 대기업을 옥죄는 듯한 경제민주화에 대한 반감부터 ‘착시 현상’이라 불릴 정도로 소수의 기업만 잘 나간다는 시각에 부담감도 내비쳤다.

하지만 이들이 쏟아낸 고민과 괴로움의 내면에는 공통된 ‘열망’이 흐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기업이 앞으로도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

대기업 집단이 하나 무너진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거 이상의 파장을 몰고 온다. 당장 그 기업에 몸담고 있는 수천∼수만명이 직장을 잃게 된다. 그 가족과 하도급업체 직원들, 그리고 그 가족들까지…. 오너는 물론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수뇌부의 판단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은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도, 과시용 M&A(인수·합병)의 도구도 아니다. 수많은 이들의 생계가 달린 중차대한 곳이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생존기업을 만드는 것은 구성원 모두의 열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비교적 잘되고 있는 대기업 임원은 휘청거리는 대기업의 회장을 향해 “무리한 몸집 키우기 경영이 불러온 화(禍)”라고 했다. 하지만 보수적 경영으로 유명한 기업에서는 CEO의 추진력 없음에 답답함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고정관념과 선입견 버려야

이런 상황에서 짐 콜린스의 저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는 참고할 만하다. 그는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깨는 위대한 기업의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버스에 적합한 사람을 먼저 태우고 나서, 어디로 차를 몰지 정한다: 위대한 기업에서는 전략을 세우기 전에 먼저 적합한 인재들을 모았다. *사실이 꿈보다 더 좋다: 현실을 외면하며 근거 없는 낙관론에 기댄 회사일수록 위대한 회사로 도약하는 데 실패했다. *고슴도치를 택할 것인가, 여우를 택할 것인가: 영악하게 잔꾀를 쓰며 기회마다 기웃거리는 여우 전략보다 일관성 있게 한 가지 일에 매달리는 고슴도치 전략이 위대한 회사를 만든다. *규율 있는 사람들의 규율 있는 행동이 성과를 지속시킨다: 규율을 잡기 위한 관료제와 계층제는 회사의 창조성과 공동체의식을 앗아간다. 자유와 책임의 문화를 퍼뜨리고 자율적인 사람들로 회사를 채우라.

한민수 산업부장 ms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