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다큐멘터리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땡전 한 푼 없이 유럽여행?… 영화학도 4인의 도전기
입력 2013-11-27 16:57
“야, 대박이야. 땡전 한 푼 없이 유럽에서 여행하는 방법을 찾았어.”
다큐멘터리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감독 이호재)의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다. 유럽여행을 계획한 사람은 이호재(24) 하승엽(22) 이현학(20) 김휘(20) 등 4명.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이들은 유럽 각국 민박집의 홍보 영상을 찍어주고 그 대가로 숙식을 제공받겠다는 야심에 찬 계획을 세운다. 영화 속에서 이어지는 내레이션은 이러하다.
“그러다 일이 잘 풀리면 (민박집보다 큰) 호텔 영상도 만들어주고, 그렇게 되면 유럽에서 ‘무한대’로 머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계획은 1년 동안 유럽에서 영상을 멋있게 만들다 영국으로 가서 ‘제2의 비틀스’가 될 뮤지션을 만나 그들의 데뷔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1년의 과정을 촬영해 영화로 개봉할 것이다. 이런 계획은 대학 생활 처음으로 우릴 들뜨게 했다.”
하지만 세상 일이 이들의 생각처럼 쉽게 굴러갈 리는 없을 터. 이들은 노숙과 히치하이킹만 반복한다. 비상금 명목으로 챙겨온 80만원도 다 떨어져간다. 결국 모든 계획을 포기하기로 결심하는데, 바로 그날 영상 제작을 의뢰하는 한 민박집 주인의 전화가 걸려온다. 기사회생의 순간이었다.
이후의 과정은 탄탄대로였다. 이들의 감각적인 영상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숙박업체의 러브콜이 잇따르고, 프랑스→이탈리아→터키→영국을 차례로 방문하며 작은 명성을 쌓아나간다. 수많은 사람과 평생 못 잊을 추억도 만들어간다. 급기야 팀의 수장인 이호재가 가장 좋아하는 영국 밴드인 아르코의 뮤직비디오 제작까지 도맡는다. 무모하게 느껴졌던 프로젝트가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프로’가 아닌 영화학도가 만든 작품인 만큼 영화의 질감은 거칠고 만듦새는 투박하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생생한 도전기는 묘한 울림을 준다. 이들은 자기 자신을 ‘잉여’라 부르는데, 여기엔 생각은 많으나 실천하는 걸 싫어해 우리 사회의 ‘잉여인간’으로 전락해버렸다는 자조의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다면 그 누구도 이들을 ‘잉여’라 부를 순 없을 듯 하다. 28일 개봉. 12세가.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