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하태림 (9) “교회 못 팔겠다” 하루 전 계약취소 통보받고…

입력 2013-11-27 16:43 수정 2013-11-27 21:28


2008년 고려대 병원을 그만 두기로 결정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다른 곳에 가서도 사랑을 전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결정하기까지 망설임이 컸다. 병상에서 하나님의 증인이 되겠다고 한 약속을 처음으로 실천한 곳이다. 1991년부터 햇수로 18년을 몸담았던 곳이다. 그간 만났던 1000명이 훨씬 넘는 환자들, 병원 직원들 모두 가족 같았다. 함께 예배하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울고 웃었다. 하지만 감상에 젖다 보면 그만두지 못할 것 같았다. 결심을 굳혔다. 뚜렷한 계획을 세우기 전이었지만 우선 병원에 사직서를 냈다. 그 길로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으로 향했다. 내겐 기도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빠르게 응답하지 않으셨다. 다급한 마음에 보챘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몇 개월이 지나서야 응답이 왔다. 교회를 개척해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섬기라고 하셨다. 당장 수중에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어디에 교회를 개척해야 할지 몰랐다. 지인들에게 교회를 개척해야 한다며 무작정 도움을 요청했다. 한 지인이 인터넷에서 보니 인천 송도에 좋은 매물이 나왔다고 했다. 7층 건물에 교회는 5층에 위치해 있었다. 신축건물이라 깨끗했다. 음향장비와 강대상 등 모든 것이 잘 갖춰져 있었다. 목사님은 “개인사정으로 목회를 그만 둔다”며 “마침 좋은 뜻으로 목회를 한다고 하니 시설물을 포함해서 원래 매입 가격의 절반에 팔겠다”고 했다. 모든 것이 맞아 떨어졌다. 병원에서 알게 됐던 사람들, 지인들, 가족들이 적게는 몇 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까지 도움을 줘서 자금도 마련했다.

그런데 계약 하루 전날 전화가 왔다. “목사님 정말 죄송합니다. 교회를 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황당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원래 그 교회에 다녔던 성도 3명이 그 목사님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팔수가 있느냐”며 만약 교회를 판다면 다시는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했단다. 내 만족을 위해 3명의 신앙을 잃게 만들 수는 없었다. 계약을 포기했다. 하나님이 왜 계약을 하지 못하게 하셨는지 의문이 들었다. 다시 기도했다. 하나님은 분명히 내게 교회를 세우고 어려운 이웃을 섬기라 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 어려운 이웃에 대한 건 생각지도 않았다. 깨끗한 건물과 좋은 시설에 마음이 혹해 본질을 놓쳤던 것이다. 기도했다. 내가 섬겨야 할 어려운 이웃이 누구인지 생각했다. 병원에 있으면서 만났던 어린 아이들, 청소년들이 생각났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병상에 누워있을 때 입양 보냈던 아이가 생각이 났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돌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내도 내 뜻에 동의했다.

다시 마땅한 지역을 찾았다. 고민 끝에 서울 역촌동으로 결정했다. 2009년 5월 4층 건물 2층에 교회를 먼저 개척했다. 건물이 낡고 오래돼 공사에 손이 많이 필요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까지도 다 생각해 놓으셨다. 1988년 부평의 병원에 입원했을 때 만났던 분이 내 사정을 알게 됐다. 그 분은 인천 주안장로교회에 개척교회를 돕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고, 도움을 청하셨다. 얼마 후 인천 주안장로교회에서 다섯분이 오셔서 3일 만에 교회 공사를 깨끗하게 해주셨다. 실로 감사한 일이다.

2010년 3층에 지역아동센터를 열었다. 이름을 ‘이레지역아동센터’로 지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다는 여호와이레에서 따왔다. 한 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 아이들의 방과 후 학습활동과 병원 진료부터 일상생활까지 책임지는 부모의 역할을 하기로 다짐했다.

정리=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