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실상 불가능…” 박근혜 정부 복지공약, 지자체서 ‘18조’ 더 부담해야

입력 2013-11-27 02:03


박근혜 정부의 복지공약을 이행하려면 공약가계부 재원 외에 향후 4년간 지방자치단체 추가 부담액이 17조8900억원인 것으로 추산됐다. 여기에 지역공약 실현을 위해 124조원의 지자체 몫을 합치면 재원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그러나 정부는 복지 및 지역공약 이행에 따른 지자체 추가 부담액을 산정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충남대 경제학과 정세은 교수가 최근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제출한 ‘공약 이행을 위한 소요 재원 및 조달 계획 적정성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복지공약에 영향을 받는 11개 국고보조 복지사업(지난해 기준 지방비 5000억원 이상 투입)의 2014∼2017년 지자체 추가 부담액은 17조8900억원이다. 기초연금 등 복지공약 대부분은 국고보조사업으로 각 지자체는 국고보조율에 따른 정부 지원액을 제외한 나머지 재원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정 교수는 26일 “정부가 공약가계부에서 밝힌 향후 4년간의 복지 재원 75조원에는 지자체의 추가 부담액이 포함돼 있지 않다”며 “지자체는 매년 4조4700억원을 자체 조달해야 하는데 열약한 지방재정에서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또 지역공약 이행을 위해 계속사업 40조원 중 4조8000억원을 지방비로 마련키로 했지만 84조원이 필요한 신규 사업에 대해서는 국비와 지방비 간 분담 비율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정부는 재원 부담에서 지자체의 책임성을 강화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역공약 사업 대부분은 해당 지역에서 원했던 사업들”이라며 신규 사업에서 지자체의 재정 부담이 늘어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처럼 공약 이행을 위해 지자체가 수십조원의 추가 부담을 져야 하지만 정부는 ‘공약 이행은 중앙과 지방이 같이 짊어지는 것’이라는 원칙만 강조하고 있다. 기재부와 안전행정부는 지난 9월 지방재정 보전 방안을 발표했지만 지자체들은 취득세 영구 인하에 따른 단발성 보전 대책만을 담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당장 내년 7월 노령연금 확대 시행에 앞서 올해와 같은 영·유아 보육료 논란처럼 정부-지자체 간 재원 갈등이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한양대 경제학부 주만수 교수는 “지방자치제도는 각각의 재원을 스스로 걷고 쓰는 것인데 현재는 의사결정은 정부에서 하고 부담은 지자체에 전가되고 있다”며 “정부가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상황을 고려해 공약 이행에 따른 재정 보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 지출, 정부 4.7%P 늘 때 지자체는 25.4%P 급증…<상> 지자체 부담 더 커진다



재원 배분을 둘러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지방은 ‘2할 자치(자치 재원 20%)’에 따른 재원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지자체의 방만 경영을 지적하며 눈을 흘기고 있다. 특히 박근혜정부의 복지 및 지역공약으로 돈 쓸 곳이 많아지면서 양측의 싸움은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안길 정도다. 국민일보는 정부-지자체 재원 갈등의 원인과 문제점을 짚고 해법을 모색하는 ‘정부-지자체 재정 갈등, 나라곳간 축난다’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복지지출 100조원 시대’의 재원 부담은 비단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요 복지 사업이 지자체가 일정부분 분담하는 국고보조사업으로 운영되면서 지자체들이 재원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 및 지역 공약 이행에 따른 추가 부담과 민간투자사업 확대 방침에 따른 운영비 부담이라는 ‘3중고(三重苦)’가 지자체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급증하는 지자체 복지지출=지자체의 복지지출은 2005년 12조9000억원에서 지난해 30조9000억원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복지 예산 비중도 12.0%에서 37.4%로 25.4% 포인트 급증했다. 반면 정부의 예산 대비 복지 지출 비중은 2005년 23.7%에서 지난해 28.4%로 4.7% 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자체의 복지 지출 부담이 중앙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복지 국고보조사업 때문이다. 기초연금(정부 75%부담, 지자체 25%부담)처럼 대다수 국고보조사업은 지자체 재원이 함께 투입된다. 국고보조사업은 평균적으로 정부 60%, 지자체 40%의 재원으로 수행된다. 지난해 정부의 국고보조사업 예산 32조원 중 절반에 가까운 15조5000억원이 복지사업이었고, 이에 대응해 지자체는 7조4000억원을 복지에 쏟아 부어야 했다. 국고보조사업에 대한 지방 부담금의 지속적인 증가는 가뜩이나 어려운 지자체 재정을 짓누르는 실정이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김성주 연구원은 26일 “정부와 지자체 간에 재원분담 협의 없이 진행된 복지사업들이 지자체에 무거운 재정적 짐을 지게 했다”고 지적했다.

◇복지·지역공약에 민자사업 확대까지 지자체에 줄줄이 부담=정부는 복지 및 지역공약 이행을 위한 공약 가계부를 지난 5월과 7월 잇따라 발표했다. 그러나 지자체의 추가부담금에 대한 재원 문제는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 9월 취득세 인하에 따른 지방재정 보전방안 발표 이후 별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중·장기 지방재정 정상화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지만 TF는 현재까지 회의 한 번 열지 않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보전방안에서 취득세 인하 보전액 외에도 지방소비세율 인상 등으로 지자체에 매년 1조5000억원의 여유 재원이 생긴다”면서 “공약 사업이 정부와 지자체 공통의 책임인 만큼 이 재원을 향후 복지재원 소요 등에 활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복지공약 이행에만 지자체에 향후 4년간 매년 4조4700억원의 추가 부담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부가 종합적인 보전대책 없이 단발성 대책만을 내놓으면 제2, 제3의 무상보육 재원 논란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기초연금처럼 사실상 전국적인 복지사업은 정부가 100% 책임지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지역공약 이행을 위해 부족한 재원을 민간투자사업 활성화로 메우겠다는 방침이지만 이 역시 장기적으로 지자체 재정에 악영향을 미친다. 도로, 철도 등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이 국고지원 민자사업으로 완공이 되어도 그에 대한 시설 운영비와 임대료는 지자체 몫이기 때문이다. 2011년 국고지원 민자사업으로 인해 지자체가 민간운영사업자에게 지급한 금액은 1조1226억원으로 정부(5509억원)보다 배 이상 많았다.

분권교부세…기초연금…취득세…건건마다 충돌, 갈등 골만 키운다



정부는 지난 9월 지방재정 보전방안을 발표하면서 ‘지방 달래기’에 나섰지만 정부-지자체 재원 갈등은 해결이 요원하다. 정부가 근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갈등을 봉합하는 데 급급한 것이 갈등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것이 분권교부세 관련 사업이다. 분권교부세는 정신요양·장애인·노인시설과 같이 국가사업에서 지방으로 이양된 사업 예산을 지자체에 보전해 주기 위한 제도다. 정부는 지방재정 보전방안에서 2015년부터 이 사업들을 국고보조사업으로 환원해 지방재정 부담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자체는 정부가 생색만 내고 있다고 반발한다. 한 예로 분권교부세 대상 노인시설 사업 중 노인요양시설은 제외하고 노인양로시설만 국고보조사업으로 환원된다. 올해 노인양로시설 관련 분권교부세 배분액은 46억1900만원인 반면 노인요양시설 배분액은 2829억3700만원이다. 지자체 관계자는 26일 “정부가 2800억원짜리는 놔두고 46억원이 소요되는 사업만 환원하면서 다 해주는 것처럼 발표했다”고 말했다.

기초연금은 재원 갈등의 골을 더 깊게 만들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내년부터 4년간 기초연금과 관련해 39조6000억원이 필요하다. 이 중 지자체가 부담하는 비율은 25%로 10조1000억원에 달한다. 현재 기초노령연금보다 3조2000억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지자체가 체감하는 부담액은 훨씬 크다. 김홍환 시도지사협의회 책임연구위원은 “제도 변화에 따른 부담액뿐 아니라 노인층 자연증가분까지 포함하면 지방이 추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4조5000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취득세 문제도 정부와 지자체가 대립하고 있다. 정부는 지방재정 보전방안에서 지방소비세를 2015년까지 11%로 단계적 인상해 취득세 영구인하에 따른 지방세수 전액을 보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방소비세 인상은 당초 약속과는 다르다는 게 지자체의 주장이다. 2009년 9월 지방소비세(부가가치세의 5%를 지방세로 환원)를 도입할 당시 2013년 5% 포인트를 추가 인상키로 약속한 것이지 취득세 보전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재정난에 빠진 지자체가 내년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취득세 보전분 2조4000억원(지방소비세 3% 인상+예비비 1조2000억원)과 영·유아보육료 인상분(8000억원) 정도다. 게다가 정부와 여당이 취득세 인하 소급시점을 대책 발표일인 지난 8월 28일로 확정하면서 7800억원가량의 취득세 추가 보전이 필요한 상황이다. 무상보육도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영유아보육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좌초 위기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156곳 재정자립도 30% 못 미쳐



지난해 전남 완도군의 재정자립도는 6.9%다. 예산 4228억7700만원 가운데 자체수입이 293억1400만원에 불과하다. 재정자립도는 지자체 수입 가운데 지방세와 세외수입 등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거둬들인 비율을 말한다.

지방의 재정여건은 ‘자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낮은 재정자립도 때문에 정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구조가 계속되고 있다. 26일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244개 지자체 가운데 재정자립도 30% 미만인 지자체가 156개(63.9%)나 된다. 이는 지방세 구조가 취득세와 재산세 등 부동산 경기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지방세 가운데 취득세 비중이 25.6%, 재산세는 14.9%를 차지했다. 지방세의 40%가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최근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세수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지자체 재정수입에서 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2013년 예산 기준)를 보면 전체 지자체 중 238개가 재정적자다. 전체 적자 규모만 9조31억원에 달한다. 124개 지자체는 지방세 수입으로 직원 인건비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 간 재정이 갈수록 양극화되는 점도 문제다. 완도군처럼 자립도가 10%가 넘지 않는 곳이 있는 반면 서울은 87.7%에 달한다. 세원 격차가 커 국세 일부를 지방세로 넘겨주는 것만으로는 오히려 격차가 커질 수 있다. 지자체 스스로 세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지자체가 운신할 수 있는 폭도 크지 않다. 지방세의 세목과 세율이 모두 법률에 정해져 있어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운용할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자동차 취득세나 지역자원 시설세와 같이 조례를 통해 탄력적으로 세율을 조정할 수 있지만 활용도는 낮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성규 백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