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스라엘의 스파이였다”… 영화 ‘귀여운 여인’ 만든 아논 밀천 고백
입력 2013-11-26 19:21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아논 밀천(68)이 “나는 이스라엘의 스파이였다”고 고백했다.
영화 제작사 ‘뉴 레전시 필름’을 소유하고 있는 밀천은 1970년대 이후 ‘귀여운 여인’ ‘LA 컨피덴셜’ 등 120편의 영화를 제작하면서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밀천이 이스라엘을 위해 무기 거래에 관여했다는 등의 이중생활을 폭로한 보도가 간간이 있었지만 스스로 이스라엘 스파이로 활동했다는 것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밀천이 이스라엘 채널2 TV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우브다’에 출연, 이스라엘을 위해 각종 무기 거래를 돕고 원자폭탄 제조를 위한 필수 기술을 빼내 왔는지 등을 자세하게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출신의 밀천은 방송에서 “나는 내 조국을 위해 그 일을 했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밀천의 이중생활은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부터 시작됐다. 당시 그는 이스라엘의 원자폭탄 개발을 맡고 있던 과학관련 비밀 정보기관 ‘라캄(Lakam)’을 위해 활동했다. 라캄은 미국 해군정보국에 근무하면서 이스라엘에 군사기밀을 넘긴 조나단 폴라드가 체포되면서 정체가 드러나 87년 해체됐다.
밀천은 독일 핵관련 기술자를 설득해 비밀 기술 문서를 빼내는가 하면 미국에서 핵폭파 장치를 밀수하려다 미 연방수사국(FBI)에 적발돼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하레츠는 “밀천은 활동의 정점기에는 전 세계 17개국에 30개 업체를 운영했다”면서 “각종 무기 거래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거뒀다”고 전했다. 하지만 밀천은 “내가 챙긴 돈은 없었고 모두 이스라엘로 보냈다”고 주장했다.
밀천은 이스라엘의 우라늄 수입을 위해 남아프리카 공화국 백인 정권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활동도 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방송에서 “1840년대 흑인 노예의 삶을 다룬 영화 ‘노예 12년’의 공동제작자로 참여한 것이 당시의 활동에 대한 사죄 차원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인정했다. 밀천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감독 시드니 폴락이 “항공우주산업 분야 등에서 나의 사업 파트너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