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동북아] 한·일 갈등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

입력 2013-11-26 18:18

최근 미국 워싱턴에서 뜨거운 이슈 중 하나가 한·일 관계 악화다. 지난 12일 워싱턴 주미 일본대사관에서 열린 캐럴라인 케네디 신임 주일 미 대사 부임 축하 리셉션에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그에게 한·일 관계 개선을 주문했다. 미 고위 관리가 공식석상에서 양국 관계를 우려하는 발언을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상당수 한반도·동북아 전문가들은 최근 한·일 관계는 지금까지와 질이 다른 상황으로 접어들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과거 일본 각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위안부 문제 관련 망언, 독도 문제 등으로 양국이 다툼을 했지만 얼마 안 가 다시 정상을 되찾은 것과 대비된다는 것이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25일(현지시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일 양국 간 갈등은 새로운 게 아니지만 최근 상황은 최악에 가깝다”며 “미국의 국익을 위협할 정도”라고 우려했다. 핵무기 등 북한의 위협에 대응한 안보협력은 물론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양국 관계 악화와 관련, 미국 정부와 의회에서 한국의 책임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의 한반도 전문가는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설이 나오자 미국이 강력히 경고했고 그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후 아베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면서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양제츠 외교위원을 만나 안중근 의사 표지석을 언급한 것은 민감한 한·일 관계를 감안할 때 너무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양국 관계 악화가 장기화되면 될수록 한국의 자제를 요구하는 의견이 워싱턴에서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워싱턴 소식통은 “한·미·일 3국 간 군사안보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최근 양국 모두 잘못하고 있다는 양비론적인 시각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한국이 중국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대해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미 국무부는 동북아 국가 간 경제협력이 강화되는 것이 역내 정세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재정난에 봉착한 미국이 중국에 대한 대항마로 일본의 역할 강화를 추진하고,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등 중국과 일본 간 충돌 위험이 높아지면서 한국의 입지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다. 지난 9월 25일 헤리티지재단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제임스 오워 반더벨트대 교수는 한국인들이 미국과 중국 모두와 동등한 관계를 맺으려 하고 있는데 이는 현실성이 없다며 비웃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