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잇단 금융사고, ‘CEO 리스크’ 라는데… 낙하산 회장님, 내부통제 역부족

입력 2013-11-27 05:02


“드러난 주인이 없다고 해서 금융을 특정 인사·계층의 소유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금융권에 투신해 은행장도 하고 지주회사 회장도 하는 스타가 내부에서 나와야 한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지난 4월 발언은 금융지주사 대부분이 ‘주인 없는 회사’여서 그동안 내부에서 스타 최고경영자(CEO)가 나오기보다 외부에서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가 투입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뜻이다. 금융지주 10여년 역사를 돌아보면 4대(KB·우리·신한·하나) 금융지주 CEO의 3분의 2가 새 정권 출범 1년 전후로 교체됐다. 그만큼 금융권 인사가 정치적 ‘외풍’에 많이 흔들렸다는 얘기다.

최근 본점 직원의 90억원 횡령과 도쿄지점 비리 등 국민은행의 잇단 금융사고도 이 같은 관치금융의 폐해로 내부통제가 제대로 안 돼 발생한 것으로 지적된다. KB금융을 비롯한 주요 금융지주사는 낙하산 관행이나 내부 권력다툼 등 ‘CEO 리스크’가 심각해지자 2011년 이후 경영 승계 시스템을 마련했다. 그러나 아직 시행 초기라 실효성·공정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일반적인 방식은 이사회 산하 기구가 후보군을 선정, 평가해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에 전달하면 회추위가 심사를 거쳐 최종 후보를 낙점하는 식이다. 금융지주마다 후보군을 관리하는 조직이 다르며 회추위 구성도 제각각이다. 또 정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곳에선 내부 후보군을 양성하는 시스템이 있어도 외부 인사가 들어올 여지가 여전히 많다.

KB금융에선 행원부터 시작한 ‘순수 내부 인사’가 회장이 된 적이 없다. ‘MB맨’ 어윤대 회장이 물러난 뒤 지난 6월 모피아(MOFIA·옛 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 출신 임영록 회장이 선임됐다. 평가보상위원회가 후보군을 올리고 회추위가 표결을 하는 등 승계 프로그램에 따라 선임됐지만, 당시 국민은행 노동조합은 지주 사장으로 3년 재직한 임 회장을 낙하산 인사로 규정했다.

공적자금이 투입돼 있는 우리금융지주는 후보가 공모되는 데다 대주주인 정부(예금보험공사) 인사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어 승계 프로그램이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지난 정권 때 승승장구하던 이팔성 전 회장도 대표적인 MB맨이었다.

상대적으로 외풍을 덜 받는 신한과 하나금융지주에선 각각 라응찬, 김승유 전 회장이 장기 집권했다. 이들의 장기 집권이 논란이 되자 신한금융은 만 67세(연임 시 70세까지 재임), 하나금융은 70세까지로 CEO 연령을 제한했다. 두 회사의 승계 시스템은 외부 인사보다는 내부 출신에게 다소 유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나금융에선 지난해 내부 출신 김정태 회장이 선출됐다. 최근 차기 회장 선출 절차에 돌입한 신한금융에선 역시 내부 출신인 한동우 현 회장이 연임에 도전하고 있다.

정권의 외풍과 함께 회장 임기(3년)가 짧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경영진이 자주 바뀌면 조직의 통제가 어려워지고 단기 실적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26일 “전문성을 갖춘 인물이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집권해야 조직이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KB금융의 잇단 비리·부실에 대한 책임이 전·현직 경영진에게 있다며 성과급 지급에 제동을 걸었다. KB금융 이사회는 어윤대 전 회장에게 지급할 스톡그랜트(주식성과급)에 대한 논의를 전면 보류했지만 민병덕 전 국민은행장은 얼마 전 수억원대 성과급을 받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엉망이 된 국민은행에서 CEO가 성과급을 챙기는 것이 정서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는 게 당국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