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이성규] 복권을 전자카드로 구입하라고?

입력 2013-11-26 18:06


청정국가로 알려진 싱가포르는 숨겨진 카지노 강국이다. 2006년 외국 카지노 자본에 문호를 개방했고 2010년 2곳의 복합 카지노 리조트를 열었다. 외국인 관광을 겨냥했지만 내국인도 출입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국민들을 도박에 빠뜨릴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싱가포르 정부는 내국인이 카지노에 출입할 때 하루 100싱가포르달러(8만5000원)의 고액 입장료를 내게 하고, 가족이 특정인을 ‘블랙리스트’로 신청하면 카지노 출입을 금지하는 등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규제책을 마련했다. 이 결과 싱가포르 정부 조사에 따르면 싱가포르 성인의 도박 참여율은 2008년 54%에서 2011년 47%로 오히려 하락했다.

정부가 복권을 구입할 때 현금 사용을 금지하고 일정 금액만 살 수 있는 전자카드를 의무적으로 이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는 26일 ‘전자카드제 도입 방안에 대한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고 밝혔다. 전자카드는 카지노 등 사행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사전에 개인의 신상정보가 입력된 카드에 돈을 충전한 뒤 게임장에서 다시 칩 등으로 바꿔 사용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제도다. 이를 복권 구입에도 적용하는 것을 검토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국 복권판매점에 전자카드 식별장치를 설치·관리해야 하는 등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를 떠나 복권 구입자의 신상 정보를 국가가 관리하는 게 적절한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1000원 한 장을 투자해 로또 ‘대박’의 꿈으로 일주일을 행복(?)해 하는 대다수 국민을 잠재적 도박 중독자로 매도하는 것은 아닐는지. 우선 강원랜드 출입자에게 전자카드 사용을 의무화한 뒤에 복권에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 순서다. 싱가포르처럼 실효성 있는 ‘진짜’ 도박에 대한 근절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에서 정부가 일의 선후(先後)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세종=경제부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