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박인비의 연설

입력 2013-11-26 18:37

역사상 최고의 명연설로 꼽히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처음에는 주목받지 못했다. 미국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11월 19일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에서 죽은 장병들을 위한 추도식의 주연은 당대 최고 연사로 두 시간 공식 연설을 맡은 에드워드 에버렛이다. 링컨은 그 뒤를 이어 272개 단어로 단 2분간 짤막한 연설을 했다. 사투리와 허스키한 목소리는 뒤에까지 잘 전달되지 않았고 시카고 타임스는 “외국의 지성인들에게 미합중국 대통령이라고 소개할 사람의 어리석고 밋밋하고 싱거운 연설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미국인의 뺨이 수치로 물들었다”고 혹평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5월 총리에 오른 윈스턴 처칠은 의회 연설에서 “내가 국민들에게 바칠 것은 피와 수고, 땀과 눈물밖에 없다. 우리는 바다와 하늘에서, 강과 항구에서, 들판과 시가지와 언덕에서 끝까지 싸우고 승리할 것이다”며 영국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었다. 존 F 케네디는 “처칠은 영어를 동원해 전쟁터로 내보냈다”고 극찬했다. 20세기 최고의 명연설가로 꼽히는 처칠이지만 혀 짧은 소리와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말을 더듬는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일부러 더듬거리는 말을 집어넣었다고 한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췌장암을 진단받고 2005년 6월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항상 갈망하라,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명연설을 남겼다. 링컨이나 처칠만큼 역사에 남는 명연설은 아니지만 진정성이 담긴 연설은 항상 감동을 준다.

며칠 전 골프 여제 박인비가 한국 선수 최초로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올해의 선수상’을 받으며 10분간 영어 연설로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 로레나 오초아의 스코어카드를 보고 놀라워했다”며 “저는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약혼자를 언급하면서는 “그는 항상 저를 웃게 만든다. 사람들이 그를 행운의 남자라고 말하지만 정말 운 좋은 사람은 나다. 그가 있어서 골프와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곤 약혼자를 향해 한국말로 “오빠, 고마워, 사랑해”라고 울먹였다.

박인비는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처음 건너가 영어에 자신 없던 시절, 우승하면 영어 연설이 부담스러워 일부러 퍼트를 실수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번 연설을 위해 그녀는 5일간 하루 한 시간씩 연습했다. 한국 선수라 스피치를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더 열심히 준비했다는 그녀. 악바리 근성이 예쁘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