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과시욕… 힐링 아닌 킬링캠핑

입력 2013-11-25 18:35


#직장인 박명호(가명)씨는 지난 여름휴가를 캠핑장에서 보내기 위해 캠핑장비 일체를 구입했다. 빠듯한 월급 탓에 원하는 브랜드의 제품을 사지는 못했다. 마음에 뒀던 제품들은 계획한 예산을 크게 웃돌았기 때문이다. 합리적 소비에 비중을 뒀던 박씨. 그러나 캠핑장을 다녀온 후 밀려오는 건 후회였다. 박씨는 “무리해서라도 유명한 브랜드의 장비를 사는 게 옳았다”며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캠핑장의 고가 텐트를 보면 어깨가 처지고 지인들조차 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캠핑인구의 급증과 더불어 발전한 캠핑산업이 어느새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았다. 산업의 힘이 없던 소비도 만들어내고 있는 현 상황은 우리나라의 ‘캠핑붐’을 반영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같은 번성이 몇몇 브랜드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고 그 전면에 고가 마케팅이 서있다는 점이다.

캠핑 성수기라 할 수 있는 지난 8월 서울YWCA는 ‘캠핑용품 가격과 소비자 인식’ 보고서를 내놓았다. 화두는 국가별로 차이를 보인 제품의 가격이다. 우리나라와 미국, 호주, 일본 4개국에서 팔리는 10개 제품의 평균 소비자가격은 우리나라가 미국보다는 19%, 호주보다 35%, 일본보다 37% 비쌌다. 특히 일본 브랜드 스노우피크의 일부 텐트는 국내 평균 가격이 148만원인 반면, 일본에서는 77만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비싸지만 잘 팔리는 이상한 구조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우리나라 소비자의 성향과 맞닿아 있다. 제품의 구매 기준이 실용적인 면보다 브랜드 인지도에 치우쳐 있다는 얘기다. 용품의 성능이 가격과 비례하지 않다는 조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캠핑장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가격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소비자의 선택은 더욱 제한적이다.

경기도에서 캠핑장을 운영하는 A씨는 “캠핑장 안에 들어찬 텐트의 값을 모두 합하면 수억원은 될 것”이라며 “캠핑이 대중화되는 분위기는 좋지만 과시욕이 지나친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또 “캠핑장을 찾은 한 아줌마가 어린 아들에게 값이 싼 텐트의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당부하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안타까웠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월감, 집단소속감 등을 품은 소비층의 동조현상이 캠핑·아웃도어 붐을 타고 경쟁적인 제품 구매에 다시 한 번 불을 붙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텐트의 가격이 텐트 안의 가족을 판단하는 잣대가 된 건 어쩌면 수입차를 동경하는 세태와 같은 맥락을 갖는다. 우려되는 점은 캠핑문화가 산업에 휘둘려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로그램만 보완하면 캠핑은 우리 아이들에게 훌륭한 자연 교육 아이템이 될 수 있다. 그 바탕에 어떤 돌을 괴는지에 따라 마음을 여는 폭도, 마음에 담는 깊이도 달라질 수 있다.

김명환 한국오토캠핑연맹 사무총장은 “많은 캠퍼들이 캠핑장을 가서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이럴 때 그 누구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가족 소통의 장으로 꽃을 피운 캠핑의 문화를 위해 정부가 지정한 국민여가캠핑장이 텐트를 무상으로 대여하는 식의 현실적 보완을 전개, 대중이 부담을 덜 수 있는 환경과 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일 쿠키뉴스 기자 ivemic@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