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지나가는 차 뒤쫓으며 “Help Help”
입력 2013-11-25 18:26
“Help(도와주세요)! Help!”
필리핀 세부 중심가에서 북부 지역인 단 반타얀(Daan Bantayan)으로 가는 2차선 도로변. 태풍 하이옌의 영향으로 반파된 집이나 뿌리째 뽑힌 나무, 쓰러진 전신주 사이에서 무기력하게 앉아있던 어른과 어린아이들은 도로 위 차량을 향해 두 손을 내밀었다. ‘Help’라 적힌 팻말을 도로변 나무에 걸어놓은 곳도 적지 않았다. 일부 어린아이들은 지나가는 차를 뒤쫓으며 ‘도와 달라’며 소리 질렀다.
지난 22일 한국교회필리핀재해구호연합과 찾은 단 반타얀 지역 도로변엔 사탕수수와 망고나무, 대나무가 엿가락처럼 휜 모습이 계속 이어졌다. 울리아나 리빵키(48·여)씨는 45도로 기울어진 판잣집 앞에서 망연자실한 채 서 있었다. 그를 비롯한 8명의 가족이 한 평(3.3㎡) 남짓한 지붕이 없는 집에서 생활했다. 그는 “비가 오면 무너진 집 바닥의 틈새 속에서 지내야 한다. 하루 속히 집수리를 해야 하나 자재를 구할 방도가 없다”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단 반타얀 지역은 이번 태풍으로 주민 90% 이상이 살던 집을 잃었다. 나무판자로 만든 벽에 슬레이트 지붕을 올린 형태가 대부분이라 강풍 피해에 취약했던 탓이다. 여기에 태풍으로 우후죽순 쓰러진 나무들도 마을 시설을 파괴하는 데 일조했다. 단 반타얀 인근 티눕단 지역은 시장과 주택을 비롯한 마을 시설이 나무와 함께 쓰러져 마치 폭격을 맞은 모습이었다. 한 마을 주민은 “마을주민 95% 정도가 태풍으로 집이 무너졌다”며 “도로 안쪽엔 마을 대다수의 빈민들이 살기 때문에 지금 당신이 보는 것보다 형편이 더 어렵다”고 증언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다를 마주한 단 반타얀 지역의 성서침례교회(Baptist bible church)는 지난 15일 태풍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교회 보수공사를 하던 리토 목사는 “태풍 대피소에서 만난 교인에게 ‘교회가 바람에 쓸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이 났다”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현재 이 지역엔 한국을 비롯한 스위스, 독일, 프랑스, 일본, 이스라엘 등의 군대나 구호단체가 들어와 긴급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식량배분 등 일시적인 구호활동에 그쳐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거리에서 구걸하며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길버트 아라비스(34) 단 반타얀 부시장은 “주택이나 학교 등 마을 시설 90∼95%가 파손됐다”며 “대피소가 한곳 밖에 없어 오갈 데 없이 지내는 이들이 너무도 많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단 반타얀(필리핀)=글·사진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