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 방향타가 없다] 견고해지는 美·日… 거침없는 中 사이 ‘샌드위치’ 신세
입력 2013-11-25 18:11 수정 2013-11-26 01:08
(상) 중국 딜레마에 빠진 한국 외교
최근 동북아 정세는 격랑에 비유된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에 대한 미국의 환영과 지지, 방공식별구역을 둘러싼 한·중·일 3국 간 갈등은 중·일 간 센카쿠 열도 대립, 한·일 간 과거사 및 영토 갈등 문제와 맞물려 한꺼번에 폭발할 수 있는 사안이다. 동북아 곳곳에 지뢰밭이 널려 있는 셈이다. 이런 첨예한 국익전쟁 속에서 한국 외교는 전략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을 맞고 있다.
◇가까워지는 한·중, 의구심 커지는 한·미=박근혜정부 출범 후 미·중·일 3국과의 외교에서 가장 급격한 변화를 보인 것은 한·중 관계다. 두 나라는 2008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구축했지만 정치·안보 분야는 이명박정부 내내 냉랭했다. 중국에서는 우리 외교가 지나치게 미국에 치우쳐 중국을 등한시한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경제적으로 의존도가 높은 우리 정부를 비공식적으로 위협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러나 박근혜정부와 시진핑(習近平)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두 나라는 첫 고위급 외교안보 대화를 여는 등 정치·안보 면에서 유착돼 가고 있다. 이는 중국이 우리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 되면서 경제적으로 밀접해진 데다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내려는 우리 정부의 궁극적 목표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중 관계는 자국의 안보적 이익에 따라 얼마든지 변동이 가능하다.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에 이어도 등을 포함하고, 우리 정부가 즉각 ‘불인정’ 선언을 한 것에서 볼 수 있듯 특히 역사·영토 문제는 언제든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는 사안이다.
이 문제는 한·중 양국 관계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동맹국인 미국은 동북아에서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이른바 ‘재균형(rebalancing)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견제 대상은 물론 중국이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동맹인 두 나라 중 한 나라가 이탈하는 ‘동맹전이(alliance transition)’가 발생하지 않도록 외교적 노력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한국과 중국이 가까워지면서 한·미 관계가 자연스레 멀어지는 상황을 맞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25일 “동맹체제가 견고하게 잘 유지되는지 확인하고, 동맹전이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현재 한국 외교의 자리는 어정쩡하다. ‘미국=동맹, 중국=동반자’라는 단순한 도식으로는 복잡한 외교 현실을 타개할 수 없는데, 전략적인 선택을 구체화할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산정책연구원 최강 부원장은 “우리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가져갈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데 준비한 것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미 관계는 정체, 미·일 관계는 급속 진전=한·중 관계와 달리 한·미 관계는 상당 기간 정체돼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물론 우리 정부는 한·미 양국이 포괄적 전략동맹 관계를 더욱 심화 발전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한·미동맹 미래상의 한계를 지적한다. 두 나라가 2009년 ‘한·미동맹 미래비전’에서 전략동맹의 미래상을 제시했지만 이후 몇 년간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플랜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동맹을 업그레이드하는 ‘동맹변환(alliance transformation)’이 이뤄졌어야 하지만 이를 위한 어떤 실질적 움직임도 없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일각에선 지난 5월 이뤄진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추상적인 선언이 주류를 이뤘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새 정부 들어 두 나라 간 동맹변환에 필요한 내용을 채우는 작업이 없었다”며 “앞으로 동맹 강화의 틀을 짜는 작업이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일본의 적극적인 대미 외교와 여기에 부응한 미국의 화답은 속성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미 양국은 동맹 60주년임에도 올해 동맹의 전략적 틀을 논의하는 2+2(외교·국방장관) 회의를 열지 못했다. 그러나 미·일 양국은 10월 이를 개최했고, 이 자리에서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을 공식적으로 환영하고 지지했다. 이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이슈다. 그런 만큼 우리 사회의 우려 목소리에 대한 답변은 ‘이해한다’는 수준으로 돌아오고 있다. 한반도에 국한된 한·미동맹이 동북아 역내를 기반으로 하는 미·일동맹의 하부구조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