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의구] 대선 불복, 2004년 탄핵

입력 2013-11-25 17:47 수정 2013-11-25 17:48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2004년 3월 12일 총선을 불과 1개월가량 앞둔 16대 국회에서 발의됐다. 야당인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이 표결을 강행해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소추안이 통과됐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심리하는 동안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고 5월 14일 소추가 기각됨으로써 노 대통령은 63일 만에 복귀했다.

야당이 당시 제기했던 탄핵 사유는 대통령의 위법 및 위헌 사항들이었다. 노 대통령은 “개헌 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가 없다”(2004년 2월 18일),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 “대통령이 뭘 잘해서 우리 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2월 24일)는 등 총선에 개입하는 발언들을 했다. 중앙선관위는 3월 3일 대통령에게 중립의무 준수를 요청했지만 노 대통령은 여당을 계속 공개 지원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국정비판과 선거불복은 별개

헌재의 판단은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일부 위반했지만 위반 정도가 탄핵의 사유가 될 정도로 중대하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공공연한 여당 지지 발언은 선거 중립의무 위반이고, 선관위에 유감을 표명한 것은 공직선거법을 폄하한 위헌 행위이지만 대통령 탄핵을 위해서는 국민의 신임을 저버리거나 자유민주 기본질서에 적극적인 위반을 구성해야 한다는 게 탄핵 기각의 이유였다.

헌재에 앞서 국민이 내린 결정은 엄정했다.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확보해 원내 과반을 차지했다. 한나라당은 121석의 제2당으로 주저앉았고 새천년민주당과 자민련은 9석과 4석의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탄핵 사태는 대통령의 권한을 중단시키려는 극단적 기도는 국민들의 강한 저항을 부른다는 교훈을 남겼다.

하지만 18대 대선이 1년도 되지 않아 선거에 불복하고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도가 노골화되고 있다. 민주당은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당내에서는 강한 투쟁을 위해 대선 불복의 기치를 내걸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유서 깊은 민주화 세력인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 한 신부의 대선 불복 발언은 범야권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땅위의 평화를 얘기해야 할 사제의 입에서 군사훈련에 맞서 실탄을 쏴 인명을 살상한 북한의 행위가 당연하다는 식의 발언이 나오는 것도 놀랍지만 대통령 하야 요구를 계속하겠다는 집착도 종교적 양심의 발로라고 치부하기에는 지나치다. 10여년 전 명백히 선거에 개입했던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며 촛불을 들었던 집단들이 이제 현행법 위반 혐의조차 확인되지 않는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저 진영논리일 뿐이다.

下野 요구 땐 역풍 명심해야

현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에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대선 관리의 책임을 대통령에게 지우는 것은 비약이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에 대한 검찰 난맥상이나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기밀 등급 해제의 책임 문제는 선거와 본질적으로 다른 사안이다. 국정은 국정이고 대선은 대선이다. 사법부 판단이 나오는 대로 선거개입의 책임을 묻고 국정원 개혁 문제는 국회에서 논의해 달라는 대통령의 주문이 시원스럽진 않지만 틀린 것도 아니다. 법에 따라 국정을 이끌어야 할 대통령이 여론에 밀려 임의로 임면권을 행사한다면 그게 더 큰 문제다.

대선 불복은 선거라는 민주주의 절차의 근간을 훼손하고 생산적 정치를 파괴한다. 정치가 국민을 볼모로 게임을 벌여 불안을 조장하고 국가 신인도 하락을 초래했던 2004년 탄핵 사태를 곰곰 되새겨봐야 할 때다.

김의구 편집국 부국장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