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정선화첩 두 번의 화재에도 살아남아… ‘돌아온 화첩’ 출간
입력 2013-11-25 17:25 수정 2013-11-25 21:54
조선후기 진경산수화를 개척한 겸재 정선(1676∼1759)의 금강산 그림 등 21점을 모은 ‘겸재정선화첩’은 두 번이나 화재를 만났으나 살아남았다. 겸재가 비단에 그린 이 화첩은 1925년 한국을 방문 중이던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 신부가 시중에 나돌던 것을 입수해 독일로 가져간 것으로 추정된다.
1975년 독일에서 유학 중이던 유준영 전 이화여대 교수가 처음으로 발견하고 이듬해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국내에 그 존재가 알려지게 됐다. 1980년대 초 뮌헨 바이에른 주립고문서연구소에 근무하던 베네딕토회 수녀가 이 화첩의 보존처리를 자원했다. 이 수녀에게 화첩이 맡겨진 직후 아파트 화재로 수녀는 사망했으나 다행히도 연구소에 보관돼 있던 화첩은 화를 면했다.
이후 왜관수도원 선지훈 신부가 화첩을 반환받기 위해 노력한 것이 결실을 맺어 2005년 10월 22일 오틸리엔 수도원이 같은 베네딕토회 소속인 경북 칠곡 왜관수도원에 영구대여 형식으로 반환했다. 80년 만의 귀향이었다. 하지만 2007년 4월 6일 왜관수도원에 불이 났다. 불길 속에서 문서고에 보관돼 있던 화첩을 안전하게 구해냈다. 화재 이후 2010년 4월부터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 보관 중이다.
우여곡절을 겪은 ‘겸재정선화첩’의 전모가 일반에 공개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25일 서울 통의동의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돌아온 문화재 총서 시리즈’ 첫 번째로 ‘겸재정선화첩’의 환수과정 및 학술적 의의를 담은 단행본 ‘왜관수도원으로 돌아온 겸재정선화첩’을 출간하고 화첩 진본과 영인복제본을 선보이는 전시를 연다고 밝혔다.
26일부터 내년 2월 2일까지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왕실의회화실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겸재정선화첩’이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전시에는 화첩에 실린 21점이 모두 공개된다. 반환 이후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화첩 일부가 특별전에 나온 적은 있으나 화첩 전체와 관련 자료가 한꺼번에 모이기는 처음이다. 매주 화요일 화첩 그림이 한 면씩 교체 전시된다.
화첩에 수록된 21점 중에서 금강산의 전체 경관을 담은 ‘금강내산전도’와 내금강의 명소인 ‘만폭동도’, 외금강의 명소인 ‘구룡폭포’ 등 3점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태조 이성계(1335∼1408)가 성장기를 보낸 함흥의 고향집에 손수 심었다고 전해지는 소나무 세 그루를 그린 ‘함흥본궁송도기’도 눈길을 끈다. 진경산수화, 고사인물화, 산수인물화 등 겸재의 다채로운 예술세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작품들이다.
안휘준 이사장은 “해마다 ‘돌아온 문화재 총서 시리즈’를 발간함으로써 귀환 문화재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 가치를 국민과 공유하는 작업을 추진해나갈 것”이라며 “학술강연회 및 전시회도 함께 기획해 돌아온 문화재를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알리는 일에 힘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