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탄 ‘마약왕’… 경차 몰고 추격해 붙잡았다
입력 2013-11-25 05:21
지난 7월 18일 오후 경남 김해시 상동 일대에서 은밀한 차량 추격전이 벌어졌다. 마약 판매상을 태운 은색 벤츠 차량을 검찰 수사관들이 뒤쫓았다. 수십㎞ 도심 추격은 2시간여 계속됐다.
수사관들은 수사 차량인 승합차 2대와 현장에서 빌린 경차 모닝에 나눠 타고 조용히 마약상의 뒤를 밟았다. 마약상이 ‘성능 좋은’ 벤츠를 타고 모텔촌이나 도심 외곽으로 피해 다닌 탓에 추격은 번번이 실패했다. 수사관들은 팀을 나눠 마약상의 주요 동선에 잠복했다.
오후 6시45분쯤 미행을 따돌렸다고 여긴 마약상은 경계를 늦추고 김해 체육공원 인근 공터에 차를 댔다. 거래를 위해 휴대전화를 켜는 순간 근처에 있던 수사관에게 기지국 신호가 전달됐다. ‘모닝 팀’이었다. 현장으로 달려간 수사관들은 차량으로 도주로를 막았다.
수사관 3명이 마약상을 제압하기 위해 삼단봉을 들고 튀어나가 운전석 측면 창문을 깨뜨렸다. 당황한 마약상이 액셀을 밟았지만 차는 도로변 도랑에 처박혔다. 마약상은 자신을 따라오던 차가 998㏄ 경차인 데다 렌터카를 뜻하는 ‘허’ 넘버까지 달고 있어 수사 차량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서울과 부산·경남 일대를 주름잡던 ‘김해 마약왕’ 오모(43)씨가 검거되던 순간이었다.
오씨는 중국에서 부산으로 히로뽕을 들여오는 밀수조직과 연계된 최상위 마약 판매상이다. 검찰이 오씨 차량에서 찾아낸 히로뽕만 312.6g이나 된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1만2000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인 히로뽕 370g을 압수했다.
이번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윤재필)의 유일한 여검사인 김연실 검사가 6개월간 추적했다. 오씨는 지난 4월 히로뽕 중간판매상 정모(48)씨 검거로 꼬리를 잡혔다. 정씨는 오씨에게 사들인 히로뽕 318g을 서울과 경기도 성남 등지에서 팔다 붙잡혔다. 오씨는 정씨 검거 소식을 듣고 입막음을 위해 히로뽕 50g을 담벼락에 숨겨둔 뒤 정씨 내연녀에게 ‘변호사 비용으로 쓰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검찰은 지난 7월 오씨가 히로뽕을 팔려고 한다는 정황을 포착, 수사관 10여명을 김해로 급파했다. 수사관들은 오씨의 주거지 등 활동 무대를 이 잡듯 뒤졌다. 열대야가 한창이던 여름에 에어컨도 켜지 못한 채 꼬박 48시간을 차에서 잠복했다고 한다.
마약 판매상들은 고향 선후배나 교도소 수감 중 친분을 쌓은 사람들과 은밀히 거래했다. 미아리파 조직원인 최모(43·구속기소)씨도 히로뽕 중간 유통에 개입했다. 판매상들은 고성능 망원경을 소지했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일본도까지 들고 다녔다. 검찰 수사 차량 번호를 모두 파악하고 다니며 차량 안에서만 거래할 정도였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오씨 등 판매상 5명과 상습 투약자 이모(34)씨를 구속 기소하고 민모(42)씨 등 잠적한 소매상 2명을 수배했다고 24일 밝혔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