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사우디·UAE… 세계에 솟은 ‘건설 한국’
입력 2013-11-24 18:11
현대건설은 1965년 11월 태국 남부 파타니∼나라티왓 구간 98㎞ 고속도로 공사를 540만 달러에 수주하며 해외 진출의 스타트를 끊었다. 당시 현대건설의 전체 수주액을 훌쩍 넘어서는 대규모 공사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도로포장과 교량 건설에서 현대건설은 2년이 넘는 공사 기간을 통해 115만 달러를 추가로 투입하며 손실을 입었다. 낯선 열대기후가 공사를 방해한 데다 아스팔트 콘크리트(아스콘) 생산 경험조차 없던 현대건설로서는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건설의 역사가 곧 국내 건설사(史)=이처럼 국내 건설사의 첫 해외 공사는 적잖은 손실을 가져왔지만 해외 진출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태국에서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한 이듬해 현대건설은 베트남에 진출했다. 1960년대 말에는 괌, 호주, 파푸아뉴기니, 알래스카 등으로 진출 지역을 확대했다.
해외 현장에서 차곡차곡 경험을 쌓아가던 현대건설은 1975년 바레인 조선소 공사를 시작으로 중동 진출을 본격화했다.
이듬해에는 당시 ‘20세기 최대 역사(役事)’로 일컬어졌던 9억3000만 달러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따냈다. 수주액만 놓고 봤을 때 당시 우리 정부 예산의 25%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을 뿐 아니라 전년도 해외 건설 수주 총액(8억1000만 달러)보다도 많았다. 이후에도 11억1000만 달러 규모의 알코바 1·2 공공주택 사업, 최초의 턴키 플랜트 공사인 알코바 담수화 프로젝트 등 중동에서의 잇따른 수주는 한국 경제의 ‘오일 쇼크’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했다.
현대건설은 1982년 싱가포르 마리나센터 건축 공사 수주 등 동남아 시장에서도 수주를 이어가며 같은 해 해외 공사 누적 수주액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플랜트 공사를 본격화하며 이란 사우스파 가스처리시설 관련 2·3·4·5단계 공사를 따냈다. 2008년에는 카타르에서 21억 달러 규모의 복합화력발전소 공사를 낙찰받아 단일 공사로는 최대 규모의 해외 공사 수주 기록을 세웠다.
2006년 아랍에미리트(UAE) 제벨알리 컨테이너 터미널 공사를 맡아 누적 수주액 500억 달러를 달성한 후에는 해외 수주액이 급격히 늘어 7년 만에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단순 시공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플랜트 사업과 원전 시공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한 결과다.
◇제2의 중흥 맞은 해외 건설=현대건설이 첫발을 내디딘 국내 건설사의 해외 진출은 성공과 좌절을 반복했다. 1970년대 중동 건설 붐이 일면서 한때 세계 2위 건설 강국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지만 유가 하락과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부침을 거듭해 왔다.
1970년대 중반까지 국내 건설사의 일감은 미군 시설 및 차관 사업에 집중됐다. 그러던 중 1973년 삼환기업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도로공사를 수주하며 중동에 처음 진출했다. 1970년대 중반 두 차례 오일 쇼크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산유국들이 항만, 도로 등에 집중 투자하며 중동 건설의 황금기가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1976년 25억 달러에서 1981년 137억 달러로 해외 수주 규모를 5배 넘게 늘렸다.
1980년대 중반 들어 유가 하락에 따른 중동 물량 감소로 1988년 수주액이 사상 최저인 16억 달러로 내려앉았다. 동아건설의 리비아 대수로 공사 2단계 수주로 잠시 반짝하긴 했지만 중동 지역 편중에 따른 직격탄을 맞았다. 국내 건설 노동자의 임금 상승으로 가격 경쟁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기 힘들어졌다.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수주 시장도 축소됐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산유국들이 석유화학공장 등 생산기반 건설에 투자를 집중하며 ‘제2의 중동 붐’이 일고 있다. 2007년 397억 달러, 지난해에는 649억 달러를 달성하는 등 최근 6년간 해외 수주액이 국내 전체 누적 해외 수주액(5970억 달러)의 절반을 넘는 3829억 달러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끼리의 과도한 경쟁과 저가 수주는 여전하다. 따라서 수익성 확충과 진출 지역 다변화라는 숙제가 남아 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