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창·곡괭이로…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참혹하게 학살

입력 2013-11-24 18:19 수정 2013-11-25 00:47

‘쇠갈쿠리(쇠갈퀴)로 개잡듯이 학살’, ‘죽창으로 복부를 찔렀음’, ‘곡갱이(곡괭이)로 학살’….

일본 관동(關東·간토) 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이 이처럼 참혹하게 학살된 정황이 최근 주일본 한국대사관에서 발견된 정부 기록물에서 확인됐다. 일본 헌병이 당시 조선인 학살에 가담한 사실도 우리 공식 문서를 통해서는 처음으로 확인됐다.

국가기록원과 독립기념관 등은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발견된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 ‘3·1운동 피살자 명부’ ‘일정시 피징용자 명부’ 등을 분석한 결과 이런 사실이 드러났다고 24일 밝혔다.

◇죽창·쇠갈퀴·곡괭이로 ‘개 잡듯이’ 학살돼…일본 헌병도 학살에 가담=1923년 9월 1일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 피살자 290명 명단이 실린 ‘일본 진재시 피살자 명부’의 피살상황 난(欄)에는 학살 정황이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다. 경남 창녕 출신 한용선(23)씨는 ‘쇠갈쿠리로 개잡듯이’, 경남 함안 출신 차학기(40)씨는 ‘일본인이 죽창으로 복부를 찔러 학살됐다’고 적혀 있다. 울산 출신 박남필(39) 최상근(68)씨는 ‘곡갱이로 학살됐음’이라고 기재됐다.

함경도에 연고가 있는 박성실(30)씨는 ‘일본 헌병에게 총살’됐다고 적혀 있다. 이는 관동 대지진 당시 헌병 등 관헌은 조선인 학살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이 허구임을 입증할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경북 예천군의 이수흥(24)씨도 도쿄 동근정에서 일본인에게 총살을 당했다고 적혀 있다. 함남 단천군 출신 김민수씨와 김석현씨는 도쿄 신전구에서, 오석주씨는 동경제대 문전에서 총살당했다고 기록돼 있다.

김도형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살해 주체가 누구인지는 생략된 채 ‘총살당했다’고 적혀 있는 피해자들은 일본 관헌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은 사례”라며 “일본 헌병이 학살에 가담한 걸 우리 정부가 작성한 공식 문서를 통해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또 “잘못 신고된 명단을 추려내면 이번에 발견된 3개 명부에서 확인된 관동 대지진 당시 피살 조선인은 250명”이라고 밝혔다. ‘일본 진재시 피살자 명부’에 실린 290명 중 198명과 ‘3·1운동 피살자 명부’에 착오로 포함된 52명 등 250명이 관동 대지진 당시 희생자라는 것이다.

함께 발견된 ‘일정시 피징용자 명부’에는 징용자의 귀환·미귀환 여부, 동원된 장소 등이 적혀 있는 사실도 확인됐다.

◇명부가 60년 만에 발견된 경위=국가기록원 등에 따르면 지난 8월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된 명부들은 1953년 4∼7월 열린 제2차 한·일회담 때 쓰고자 주일본 한국대표부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승만 대통령이 1952년 12월 15일 부산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지시해 작성됐고 이듬해 1월 주일본 한국대표부로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1949년 1월 일본 도쿄 긴자 핫토리세이코 빌딩 4층에 입주한 한국대표부는 51년 도쿄 미나토구 아자부주반으로 이전했고 한·일 국교 수립 후 한국대사관으로 승격했다. 주일 한국대사관은 1979년 같은 부지에 건물을 신축했고 2010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자 내진설계를 보강하려고 개축했다. 개축 기간에 대사관은 주일 한국문화원 청사에 임시로 세 들었는데 명부는 임시 거처의 서류·비품 보관창고에서 개축한 원래 청사로 이사를 준비하다 발견됐다.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