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의 여행] 페터 춤토르 ‘건축을 생각하다’
입력 2013-11-24 17:25
2009년,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70)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세계 건축계의 첫 반응은 ‘다소 뜻밖’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국가 차원의 대규모 프로젝트로 이름을 알린 것도 아니고 동서양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건축 철학을 전파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스위스 알프스의 작은 마을 할덴슈타인에서 20여 명의 직원들과 일하는 은둔형 건축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계는 그가 추구하는 건축의 독창성과 깊이를 인정했기에 그의 수상을 크게 환영했다.
‘작은 건축’을 지향하는 그의 건축 철학은 한마디로 ‘건축에는 한 개인이 살면서 겪는 전기적 경험이 반영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거만하고 화려한 장식이 필요 없다. 건축은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고 장소와 일체가 되기 때문이다. 춤토르는 이미지가 건축 형태로 접근하는 강력한 수단임을 강조하는데 다시 말해 건축 형태에 자신의 기억 속 경험과 상상력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모의 부엌이 지닌 분위기는 내가 생각하는 부엌의 이미지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모의 정원 입구에 있는 손잡이와 그 외 다양한 손잡이들, 땅과 바닥, 햇살을 받아 따스하고 부드러운 아스팔트, 밤나무 잎으로 가득 덮인 판석, 닫는 방법도 다양한 여러 가지 문들…. 내 기억 속의 이미지들을 말하자면 끝이 없다. 이런 기억들은 내가 아는 가장 심오한 건축적 경험이다.”(9쪽)
그의 기억 속 이모의 부엌처럼 사물을 경험하는 것은 개개인의 경험 안에 머물지 않고 하나의 보편적인 경험으로 확장되고 정의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건물은 무언가를 상징하거나 대표하지 않고 건물 자체로 존재한다. 나아가 그는 건축의 실체는 형태, 볼륨, 공간이 구체화된 몸이라고 말한다. “건축은 내부와 주변의 삶을 담는 봉투이자 배경이며 바닥에 닿는 발자국의 리듬, 작업의 집중도, 수면의 침묵을 담는 예민한 그릇이다.”(12쪽)
우리를 둘러싼 공기, 소리, 빛, 물질 등과의 교감을 통해 건축의 존재감을 표현하는 춤토르의 건축 철학을 웅숭깊게 엿볼 수 있다. 장택수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