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입력 2013-11-24 19:14
에스더 4장 14∼17절
에스더는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수려한 미모를 가진 에스더는 어느 날 페르샤의 왕 아하수에로의 왕후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녀는 왕후라는 신분을 마음껏 만끽하면서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 앞에 중요한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만의 흉계에 의해 모두 죽게 된 것입니다. 에스더로서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 것입니다. 에스더에게 아버지 같은 사촌 오빠 모르드개가 던지는 질문은 그녀의 정체성을 되새기게 만들었습니다.
“네가 왜 남들보다 예쁘고 남들보다 운이 좋아 대제국의 왕후가 되어 좋은 자리에 앉게 된 줄 아느냐?” 에스더가 처한 상황과 그가 받은 질문은 우리 인생길에서 충분히 맞닥뜨릴 수 있습니다. “네가 왜 이렇게 좋은 자리에 앉게 된 줄 아느냐”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보통 “나를 위한 축복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기분, 내 주장, 내 입장, 내 돈, 내 권력…. 내 것만을 강조하는 인생은 허무합니다. 역사는 그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구원 역시 오직 내가 받은 구원만 즐거워하고 다른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모르드개의 질문을 통해 에스더는 자신의 아름다운 용모도, 왕후가 된 신분도 민족을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오직 나만을 위하여’가 아니라 ‘내 민족을 위하여’, 다시 말해 ‘이웃의 구원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세상을 구원하고 정의와 평화를 이루기 위한 축복의 통로를 찾고 계십니다. ‘나를 위함인지, 이웃을 위함인지.’ 우리는 두 가치 가운데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너 하나만 잘 살면 된다. 편히 살도록 해라”라는 소리는 결코 주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정의를 세우고 평화를 만들고 구원을 베풀기 원하십니다. 에스더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구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왕후로 세워주신 것은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함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자신이 나서야 할 때임을 알았습니다.
사람이 사명을 깨닫는 순간보다 아름다운 순간은 없습니다.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닙니다. 노래는 불릴 때까지 노래가 아닙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고 지금이 바로 그 때임을 깨달은 사람은 손해 볼 각오를 하고 담대하게 앞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조용히 나만을 위한 신앙생활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은 이웃을 섬기기 위해, 타인에게 베풀기 위해, 그리고 구원의 기쁨과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평화를 위해 팔을 벌리십시오. 복음을 위해 입을 크게 여십시오. 선교를 위해 달려가십시오. 그래서 에스더처럼 민족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 복된 교회와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에 4:14)
허원구 목사 (부산 산성교회)